환상의 빛 (1995)
어느 날 이었습니다. 우연히 카페에서 앞 테이블에 앉은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를 보았는데 시끄러운 장소여서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표정은 그 자리에서 무척이나 슬퍼 보였습니다. 그때 제 위치에서는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던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 과연 그녀의 슬픔이 그에게도 전달되었을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사람을 애도하고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아무 말 없이 살아가기도 하지만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 그림자처럼 자리 잡은 부재의 자리 쉽사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한때나마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는 흔적은 분명히 남아있는데, 영화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누군가가 있었음을 느낄 수 는 있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뒷모습의 이미지입니다. 그녀가 어릴 때 집을 나간 할머니와 자살한 남편 모두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났는데, 두 사람 모두 유카코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정작 그 두 사람이 왜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히게 됩니다. 하지만 뒷모습이라는 것은 결국 한쪽면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보는 사람도 한쪽면 밖에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불완전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카코가 남편의 죽은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남편에게 무심했거나 인식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볼 수 없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쪽밖에 볼 수 없다는 한계는 유카코가 남편이 일하는 공장에서 찾아가서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봤지만 남편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장면과 유카코와 그녀의 재혼한 남편이 처음으로 이웃과 마주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정작 앞모습을 비춰주는 차 안에서는 이웃들을 좋게 보지 않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다른 하나는 '소리'입니다. 소리는 그 소리를 내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정작 소리를 내는 대상이 그 소리와 일치하는지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가령 새소리를 기가 막히게 흉내 내는 사람이 내는 새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전부 새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곳에는 새가 없는 것처럼요. 유카코는 남편과 헤어지기 전에 살던 집에서 남편이 집으로 오는 것을 그가 가지고 다니던 방울 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신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의 시신이 남편인지 확인하는 물품으로 등장할 때의 방울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녀에게 남편의 존재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방울 그 차제가 아니라 방울이 내는 소리였을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장례식 행렬과 방울소리가 함께하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카메라는 긴 행렬의 옆을 오랫동안 비추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 행렬의 끝에는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함께 가는 유카코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행렬과 거리는 있고 조금은 뒤에 있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그녀도 방울소리를 내는 누군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봄이 돌아왔을 때, 남편과 아이들은 밖에서 즐겁게 놀고 있지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사람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지내온 시아버지와 유카고는 나란히 앉아 한 마디씩 주고받습니다.
"좋은 계절이 왔네요"
"좋은 계절이 왔구나"
사랑하는 이를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되는 어느 날, 카페에서 본 그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었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