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현실, 그리고 선택이라는 허상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s://stillsfrmfilms.wordpress.com/2013/01/22/pans-labyrinth/ >



누구에나 삶에서 힘든 시기는 찾아오는데, 그것은 때로는 불행 혹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원하지 않는 순간에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삶에 밀착되기에 더욱 견디기 어렵고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6년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스페인 내전 직후 그 여파로 참혹한 상황을 겪는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의 이야기를 동화적이지만 무척이나 잔혹한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감독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기형의 생물들은 여전히 기괴하면서 섬뜩하고, 그가 제대로 그려내고 싶었던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 독재정권의념과 행태를 그대로 체화한 것 같은 오필리아의 양아버지이자 군인인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의 비틀리고 폭력적인 태도에서 그 끔찍함과 비인간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오필리아가 만나는 세명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고통을 마주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자신이 현실의 고통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강압적이고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비달 중위의 모습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내전이라는 상황에 편승하여 자신의 성공을 꾀하고 그 와중에 본인이 가진 가학성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비달이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최소한 고통을 주는 순간에는 그가 현실의 고통을 받아 이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써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선택은 그가 양심이나 도덕과 무관하게 명령에 아무 의심도 가지지 않는 텅 빈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에 오필리아가 따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49336 >



다른 하나는 오필리아의 어머니처럼 무기력하게 현실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으로 도저히 삼을 수 없을 것 같은 비달을 떠나자는 오필리아의 부탁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말에 따르지 않는 그녀를 나무라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딸에게는 "너도 어른이 되면 이해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는 과거에 오필리아와 같이 고통을 마주했던 소녀가 이제는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직 어른이 아닌 오필리아는 그런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은 마지막 방법을 따르게 됩니다.


마지막 방법은 현실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녀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줄 구원자처럼 보이는 요정 '판'은 오필리아에게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면 고통도 슬픔도 없는 지하왕국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영화는 이에 따라 임무를 실현하면서 오필리아가 겪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애초에 오필리아에게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양아버지처럼 텅 빈 인간도 아니고 어머니처럼 미리 세상을 보지도 못한데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 마주할 가혹함이나 무기력을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유일한 선택지인 탈출조차 결코 간단하지도 않고, 최후에는 도저히 받아 들 일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혹은 탈출하는 것조차 그 대가로 지불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기 때문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성취의 결과물을 돌아볼 때 그것을 위해 바쳐온 무언가를 되새기며 씁쓸함을 느끼는 것처럼요.


언뜻 보았을 때는 동화의 외피를 뒤집어쓴 판의 미로는 지극히 차가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답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선택을 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현실 말이죠. 그렇지만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삶의 무게를 버텨내야 합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나 죽음이겠지만, 죽은 나무에서 다시 새순이 피어나는 것 같은 기적을 기다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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