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없이도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칠드런 오브 맨 (2006)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s://benefitsofaclassicaleducation.files.wordpress.com/2015/02/children-of-men.jpg>


얼마 전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어떤 지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는 피곤함과 초췌함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맴돌고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물어봐서 알게 된 그 무언가는 바로 '미래의 부재(不在)' 였습니다.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그것들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명확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에서 비롯된 미래의 부재 말이죠. 무척이나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마음에 그림자가 들어서게 한 희망 없는 미래와 크기나 방향이 다르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작 '칠드런 오브 맨' 역시 가까운 미래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이 이뤄낸 극상의 예술성이나 담고 있는 이야기와 상징들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은 글들에서 다루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한 마디만 붙인다면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이토록 섬세하면서도 차갑게 이끌어나가는 절제심 하나만으로도 칠드런 오브 맨은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걸작들의 반열에 올라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독이 관객보다 먼저 뜨거운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뜨거움이 역설적으로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를 축소시켜 이야기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니까요.





<출처 : https://echoandboom.files.wordpress.com/2010/10/children-of-men-baby1.jpg>


영화 속에서 인류를 절망에 빠트린 이유의 중심에는 '미래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 인류가 이번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라는 절망이 확신에 가깝게 변해가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버렸고, 그와 동시에 모두는 자신의 삶 역시 더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내심 깨닫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친절하게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약을 배포하면서 희망없는 세상에서 탈출하기를 적극 권장하고,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조차 사는 곳을 현재가 아닌 가장 좋았던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겠죠.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세계에 발을 붙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확실성과 가능성의 노예 중에 가능성을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8년 동안 단 한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고, 그 원인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음에도 인간은 그 절망에 굴복하여 확실한 죽음의 세계로 향하기보다는 삶에는 미래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되뇌이며 현실의 비참함과 마주합니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에게 미래를 대신 하는 것은 술과 도박이었고, 그의 아내였던 줄리언(줄리안 무어)에게는 정의와 인권, 인류의 유산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고위관료에게는 예술품이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은 희망의 끝으로 보이던 세상에서 어린 소년을 우상처럼 숭배하며 불안을 달래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들 모두가 노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죽음과 비참함의 양자택일 밖에 없고, 심지어 비참함을 통해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의 판단이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면 선택권이 있다고 위안을 삼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테오는 뜨겁고 열정적인 시간을 거쳐 냉소적이고 즉흥적인 삶을 살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숭고한 끝을 선택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을테니 우리의 고민은 극장밖에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숭고한 삶은 영화에게 미뤄두고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미래가 없는 현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말이죠. 여러분은 그 답을 찾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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