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젼 (2011)
작년에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던 메르스 사태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영화 두 편이 있었는데, 하나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작 '컨테이젼'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성수 감독의 2013년 작 '감기'였습니다. 두 작품 모두 고위험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감기는 개개인의 고통과 영웅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선택한 반면, 컨테이젼은 재난 상황 그 자체를 대응하는 시스템의 모습과 문제 해결 과정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자가 재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측면에서 재난 상황에 던져진 인간들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 자체를 보여줬다면, 후자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으로 재난의 시작과 진행상황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컨테이젼의 경우에도 주연배우들의 인지도나 연기력 면에서는 여느 블록버스터 못지않았지만요.
언뜻 보기에 컨테이젼은 감기에 비해 무척이나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인물이 등장함에도 그 행동은 최소한의 연출과 음악으로 그려냈고, 전문가의 영역인 바이러스의 발생원인, 배양, 백신 제작과 같은 과정은 심도 있게 다뤘으니까요. 감기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진 바이러스로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의 모습에 대한 묘사 역시 강렬하고 참혹한 장면 대신 통계와 숫자, 그리고 인물들이 겪는 무기력감을 통해 드러나면서 컨테이젼에서는 여느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하는 장면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사건 그 자체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힘을 잃지 않습니다. 전문 지식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관객의 몰입도를 유지할만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공포심에 짓눌리지 않고 최선의 판단을 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마음 둣 곳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이런 성취가 가능했던 이유는 기존의 재난영화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연출력과 맷 데이먼, 마리옹 꼬띠아르, 로렌스 피쉬번, 주드 로 등의 명배우들의 열연 때문입니다. 아마도 스티븐 소더버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감독이 아니었다면 같은 착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어도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풀아내진 못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지루한 다큐멘터리와 지겨운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컨테이젼 같은 방식으로 재난상황을 그려낸 영화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반갑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많은 작품들이 특이한 소재를 선택해야 관객의 눈에 띈다는 생각에 시달린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대한 바둑판에 바둑을 두는 것과 같아서 첫 수를 어디에 놓을지 보다 전체의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를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컨테이젼이 재난상황이라는 평범한 수로 시작했지만 끝에 가서는 감기와 다른 지점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것처럼, 결국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은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평범하고 익숙한 소재 그 자체를 다른 각도에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유연함과 능숙함일 것입니다.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지만, 반만 좋은 것보다는 나머지 절반까지 좋길 바라는 것이 관객의 마음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