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2017)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 작 공각기동대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Why?'였습니다. 깊이 있는 시나리오와 서늘한 결말 , 그리고 절제된 연출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20년이나 지난 지금 할리우드에서 실사 영화로 만들 이유는 딱히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물론 지난 몇 년간 그랬던 것처럼 좋은 평가를 얻은 작품을 다시 만들어 흥행을 노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원작의 향수와 깊이를 감안해볼 때 공각기동대를 흥행할만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루퍼트 샌더슨 감독의 2017년 작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은 무난히 볼만한 SF영화라고 평가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볼거리도 있고 무엇보다 1995년작 공각기동대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원작의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를 연기한 스칼렛 조핸슨(메이저 역)도 의외로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니까요. 거기에 마테바(혹은 라이노)와 가브리엘, 로쿠스 솔루스, 6과의 전차 등등 원작과 그 후속작들에 등장한 요소들 역시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물론 원작에 있던 장면을 영화적으로 다시 표현한 장면만 놓고 보자면 원작의 연출이 더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독립된 작품으로 평가하자면 2017년 작품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을 자격은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원작의 오프닝 곡을 엔딩곡으로 사용했음에도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영화의 이름이 왜 공각기동대였어야 했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메이저의 캐릭터는 쿠사나기와 외형적인 면을 제외하고 거의 동일성이 없고, 원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미래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이라 테마는 잠깐 스치듯 지나갈 뿐, 전반적인 내용은 기업의 탐욕에 희생된 개인이 어떻게 거기에 맞서 싸우는지를 비추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설정이나 전개는 공각기동대보다 풀 버호벤 감독의 1987년 작 로보캅에 가깝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기계로 신체가 대체된 주인공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가 메이저로, 기업의 이미지 쇄신과 치안 비용의 절감을 위해 기계로 부활시킨 기업의 모습은 OCP에서 '한카 로보틱스'로 변형되었을 뿐 갈등의 근본과 대립은 기업의 탐욕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합니다. 단지 2017년 작 공각기동대는 액션의 세부적인 형태와 인물들을 로보캅이 아닌 공각기동대에서 차용했을 뿐이고요.
2017년 작 공각기동대는 원작의 거대한 위상에 눌리지 않고 그 자체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요소가 풍성하게 들어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원작에서는 액션과 캐릭터만 차용하고 내용적인 면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간 점에서 영화의 제목이 로보캅이 아닌 공각기동대일 필요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에게 공각기동대는 2014년에 조세 파디야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로보캅의 속편으로 제작된 여성 캐릭터 버전의 로보캅으로 기억될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