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2017)
어느 시점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스페이스 호러'라는 하위 장르가 생겨날 정도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포물이 많이 제작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조만간 다섯 번째 작품으로 돌아올 에일리언 시리즈의 1편도 그런 시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스페이스 호러 영화이고, 그보다 좀 더 일찍 제작된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3부도 여느 공포영화 못지않게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상황을 그려냈고요. 하지만 21세기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작품이 대니얼 에스피노사 감독의 2017년 작 라이프입니다.
영화는 화성에서 가져온 미지의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 우주 정거장의 승우원들이 벌이는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는데, 언뜻 보면 어떤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저절로 알 수 있는 스페이스 호러 장르의 전형적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기존에 보았던 익숙하고 전형적인 상황들을 상당히 개연성 있고 긴박하게 그려냄으로써 장르 영화가 주는 기본적인 재미 이상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이미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보았던 익숙한 도구들이 사용되는 모습에서는 향수를 느껴기도 했고요(어떤 장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살아있는 '무언가'와 조우하는 모습이 떠오를 수 도 있습니다). 매해 장르 영화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은 무수히 제작되지만 라이프는 단순히 기존의 공식을 답습하며 안일하게 제작된 영화들과는 차별화될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스페이스 호러의 귀환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적인 재미와 더불어 작품의 제목이 라이프(Life)라고 지은 감독의 의도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제목인 라이프는 생명, 즉' 화성에서 가져온 생명체'로 이해했지만 엔딩 장면을 접하는 순간에는 '삶'이라고 읽혔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모든 고통은 주어진 상황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고 심지어 목숨을 바쳐 노력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화성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 속에 담겨있던 외계 생명체는 가만히 두었으면 우주선의 고장으로 지구를 지나쳐 우주로 사라졌을 텐데,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우주 정거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외계 생명체를 격리 혹은 퇴치하려는 시도들은 되려 결국 그 생명체가 더 커질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준 상황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심지어 후반부에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건 탈출 시도를 한 승무원은 그 선택으로 인해 가족을 위험하게 만드는데 일조했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류와 다른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한 다른 승무원의 노력도 문자 그대로 엇갈린 방향으로 궤적을 그림으로써 의도한 바를 배신하게 됩니다.
영화 라이프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호러 장르의 탈을 쓰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용구처럼 쓰이는 문구인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틀어, 최선의 판단으로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그것에 배신당하는 것이 삶(Life)이라고 절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절규의 처절함에는 노력에 배신당해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넘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데 대한 자책까지 섞여 있다는데서, 저에게 이 작품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안타까움과 연민, 인생의 허망함까지 느끼게 한 최초의 스페이스 호러로 기억될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