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악녀 (2017)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972#1173590>

비틀즈의 무수한 명곡 중에 'A day in the life'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각각 만들었던 미완성곡을 하나로 합쳐서 완성시킨 노래입니다. 개성이 강한 두 천재의 노래를 하나로 합치는 도전은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무척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 성공했고 지금도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노래가 좋았더라도 연결되는 순간이 엉망이었다면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작품의 완성도는 좋은 요소들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와 더 큰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병길 감독의 2017년 작 '악녀'는 'A day in the life'처럼 톤이 다른 두 가지 작품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영화입니다. 하나는 현란하게 펼쳐지는 액션 영화로 최근 몇 년간의 한국 액션 영화가 본 시리즈의 그림자 아래서 미미한 변주곡만 연주하는 것 같았다면, 악녀의 액션 장면은 잔혹함이나 처절함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하드 락에 가깝습니다. 그중에서도 영화가 시작하자마 펼쳐지는 수십대 일의 격투 장면과 오토바이와 칼을 이용한 액션 장면은 올드보이와 킬빌을 연상시키면서도 공간과 카메라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냈고요. 다소 빠른 카메라의 움직임이 몰입을 방해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점에서 악녀의 액션 장면들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972#1173589>


그런데 액션 장면과 달리 영화의 다른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주인공 '숙희'(김옥빈)의 삶과 관련된 드라마에서는 실망스러운 장면들의 연속이었는데, 특히 숙희와 국정원 요원 현수(성준)가 사랑을 쌓아가는 장면은 극장 내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릴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을 보는 내내 흔히 말하는 '케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두 사람을 각각 따로 찍어서 하나로 합성해 놓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고요. 신인도 아니고 이미 많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두 배우가 영화 전반에 걸쳐 엉성한 연기를 펼친 근본적인 이유는 감독이 액션 장면만큼 드라마에는 공을 기울이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악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액션과 드라마가 완전히 따로 진행되는 것을 넘어 장면의 완성도 조차 균일하지 않은 이질적인 두 영화가 하나의 제목으로 개봉한 작품이 되어버렸고요.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는 '그래도 액션은 좋았다'라는 면죄부가 발행될 때가 있습니다. 최근 마이클 베이 감독이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면죄부를 상습적으로 발행받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악녀 역시 면죄부가 필요한 영화로 기억될 듯 싶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기둥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집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간명한 교훈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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