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 전쟁 (2017)
얼마 전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페이팔의 개발자인 앨론 머스크가 AI의 위험성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AI가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저커버그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머스크 중에 어느 쪽이 맞는지 지금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상상의 영역인 영화 속에서는 어떤 뛰어난 존재의 등장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야기해왔습니다. 그중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2011년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우연히 탄생한 지능 높은 유인원 '시저'(앤디 서키스)를 중심으로 인류의 몰락을 그리고 있는데, 그렇게 7년간 이어온 시저의 일대기를 그린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은 작품이 바로 맷 리브스 감독의 2017년작 혹성탈출 : 종의 전쟁입니다.
영화적인 재미만 놓고 보자면 종의 전쟁은 2014년에 개봉한 전작 '반격의 서막'에 미치지 못합니다. 높은 곳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인원의 모습에서 보여줬던 속도감 있고 입체적인 액션 장면들은 대폭 축소되었고, 그나마 있는 액션 장면들도 종의 전쟁이라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작은 규모로 그려지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긴박감을 더해주는 배경 정도로만 사용되니까요. 그리고 영화의 설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인원들이 지나치게 '사람처럼' 싸우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작에서는 총을 쏘고 창을 휘두르는 장면조차 유인원은 특유의 속도감과 운동신경으로 인간과 차별화되는 모습들을 보여줬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양손에 든 기관총을 난사하며 말을 달리던 유인원의 광기 에 찬 에너지를 한번 더 볼 수 있기를 기대했던 저에게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의인화된 유인원의 액션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액션 장면의 지나친 의인화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종의 전쟁이 인간다움 혹은 인간성과 합리성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대립은 시저와 맥컬러프 대령(우디 헤럴슨)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시저와의 만남에서 맥컬러프는 죽은 아내와 자식의 복수를 위해서 자신과 그가 속한 집단을 위태롭게 하는 시저의 행동을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자식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집단 전체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죽인 맥컬러프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했지만 도무지 인간적이라고는 평가할 수 없고요. 즉, 이 작품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성을 버린 체 합리성만 따르는 존재가 된 인류의 어둠과 자신들의 전투 방법이나 집단 전체의 이익과 같은 합리성은 버렸지만 인간성을 얻게 된 유인원을 대비시키면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은 합리성의 어둠을 인간성의 빛으로 극복해낸 것처럼 보입니다. 가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순간에서조차 그것이 스스로를 망치고 어렵게 손에 넣은 인간성을 해칠 것이라고 판단한 시저는 평안을 얻게 되었고, 또 다른 유인원인 모리스가 유인원의 새로운 집으로 데리고 간 소녀 노바(아미아 밀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언어를 잃고 언젠가 사고력도 잃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유인원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유인원이 얻게 된 인간성은 극한의 순간에서 인류가 선택한 합리성만큼이나 짙은 어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어떤 유인원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같은 유인원을 배신하고 절멸로 이끄는데 협조하는데, 그런 모습도 인간적인 모습이고, 노바와 함께 한 유인원들은 인간들에게 혹독한 고초를 겪었는데 언젠가 노바에게 그런 고초에 대한 앙갚음을 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지극히 인간적이니까요. 그들이 평범한 유인원일 때는 외부에 인간이라는 거대한 대척점이 있었기에 유인원이 단결해야 한다는 구호가 유효했지만 그 대척점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을 핍박하고 유인원 사이에서조차 차별할만한 이유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래 왔으니까요.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은 액션 장면의 빈약함과 낙관적인 결말에서 오는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인간성과 합리성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부분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미 4편의 제작도 결정되었다는데, 다음 편에서 '인간성'이라는 선악과를 얻은 유인원이 그 안에 내포된 어둠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심도 있게 그려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