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의 세계에서 아바타가 된 인디아나 존스를 만나다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98539#1133938 >


제임스 카메론의 2009년 작 아바타는 현재까지 외화 중에서는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국내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는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이 본 작품으로, 저 역시 경이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래픽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연출 능력이 극한의 지점에서 만나 탄생한 아바타를 무척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포카혼타스'나 '늑대와 춤을'에서 접했던 '인디언과 백인 약탈자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지극히 익숙한 이야기였다는 점인데, 이와 비슷하게 뤽 베송 감독의 2017년 작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도 미래의 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몇몇 영화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발레리안의 바탕이 되는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입니다. 헤리슨 포드가 연기했던 인디아나 존스는 데인 드한이 연기한 발레리안 소령으로, 인디아나 존스가 펼친 활극의 무대는 지구의 이국적인 장소에서 우주의 이국적인 장소로 대체되었고, 두 작품이 펼치는 액션의 양상도 수직과 수평을 오가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방식이고요. 심지어 인디아나 존스 : 미궁의 사원 편에서 등장했던 각종 기묘한 음식들의 향연은 발레리안에서 다른 주인공인 로렐린(카라 델러비인)이 겪는 위기, 특히나 두개골과 관련된 요리에서 변주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발레리안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먼 미래에 우주에서 여러 외계인들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을 그렸던 스타트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능력 있는 바람둥이 역할인 주인공인 커크 선장의 모습이 발레리안 소령과 상당 부분 겹치면서, 발레리안이 스타트렉의 스핀오프로 제작되어서 스타트렉에서 수많은 종족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간인 '엔터프라이즈호'가 발레리안에서는 거대 우주정거장 '알파'로 바뀌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게 보일 정도입니다.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98539#1188273>


마지막으로 발레리안을 보며 연상된 작품이 바로 아바타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의 축으로 작용하는 외계인인 '뮬'행성인은 원시부족으로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인지라 아바타에 등장했던 나비족을 연상시키고, 영화 초반에 '빅마켓'에서 사용하는 전자 장비는 아바타를 움직이게 했던 장비들과 비슷하게 현실과 가상을 이어주는 장치로 이용되니까요.

앞에서 언급한 세 작품은 모두 영화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 작품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져온 발레리안은 영화의 외적인 화려함이나 액션 장면의 즐길거리와는 별개로 부실한 이야기에 버거워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앞의 세 작품이 분명한 한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비해 발레리안은 이야기의 중심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이국적이고 독특한 외계인들을 보여주는데 그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인공들은 여러 장소를 오가며 많은 존재들과 만나면서 사랑의 본질, 용서와 화해와 같은 무거운 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장면들조차 직전까지 착실하게 쌓아오지 못한 영화의 주제를 급하게 대사로 마무리하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저에게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는 아바타처럼 익숙한 이야기와 액션을 2017년의 최신 기술로 변주함으로써 성공을 노렸던 작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발레리안은 흥행에 참패함으로써 아바타의 성공은 제임스 카메론의 성공일 뿐이라는 사실만 확인시켰을 뿐입니다. 완전한 창착곡보다 익숙한 변주곡이 쉽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한다'라는 전제 아래서만 유효하다는 작은 교훈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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