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히어로 영화에 대한 감탄하다

언브레이커블 (2000)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31085>

마블에서 제작한 히어로 영화는 이제 연례행사처럼 블록버스터 시즌마다 찾아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고, 그 기세를 몰아 제작된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등의 드라마도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 코믹스계의 양대산맥 중 다른 한축인 DC의 영화들은 마블과 비교하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했음에도 그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야기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간의 혹평과는 별도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인 잭 슈나이더 감독의 '배트맨 대 슈퍼맨'조차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봐도 이야기 진행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DC보다 낫다고 평가받는 마블도 최근에 제작된 작품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야기의 허술함을 숨기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면, 히어로 영화에서 힘 있는 이야기로 작품을 끌어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게 보이기도 합니다.

언브레이커블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도 "XXX가 귀신이었다"의 반전으로 회자되는 식스센스의 감독인 M. 나이트 샤말란이 2000년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식스센스의 성공으로 단숨에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 샤말란의 차기작이었기에 무척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영화의 만듦새가 허술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에 기대한 바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죽고 다치는 대형사고를 당했음에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몸을 가진 주인공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에 대한 설정만 보면 무수한 총탄이 쏟아지는 한복판에 돌진해서 적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히는 장면을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 속에서 데이빗이 펼치는 액션 장면은 영화의 말미에, 그것도 아주 짧고 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묘사될 뿐이어서 헐크나 루크 케이지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 밖에 없겠죠.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31085>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히어로가 펼치는 액션의 힘이 아니라 영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야기'의 힘에 있습니다. 큰 사고에서 살아남은 데이빗이 과거의 자신이 했던 선택과 현재의 무력감과 결별한 끝에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이제까지 봤던 그 어떤 히어로의 탄생보다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었고, 데이빗과는 정 반대로 자신의 육체가 너무나도 약해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던 일라이자(사무엘 잭슨)의 비틀린 삶의 귀결 역시 반전이라는 식상한 의미를 뛰어넘어 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탄식이 나올 정도였고요.

또 언브레이커블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2008년에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아닌 그 대척점에 있는 조커를 중심으로 한 히어로 영화를 만든 것보다 8년이나 먼저 동일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다른 히어로 영화들은 영웅적인 캐릭터가 펼치는 액션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배경음악 정도로 활용했다면, 언브레이커블은 감독이 의도한 이야기라는 곡을 연주하기 위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히어로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힘으로 다른 히어로 영화와 차별화된 경지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앞으로도 계속 제작될 예정이고 아마도 그 작품들 중 대부분은 기대한 것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줄 것입니다. 이미 몇 번이고 봤음에도 여전히 토니 스타크의 능청스러움은 재미를 주고 스파이더맨의 탄생은 신선하니까요. 그럼에도 저에게 언브레이커블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캐릭터의 매력에 의존하는 마블의 영화가 주는 재미와 다른 지점에서 여운을 남긴 작품이자 식스센스를 제치고 사먈란 감독의 최고작으로 기억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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