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 복제품을 보는 안타까움

조선명탐정: 흡혈 괴마의 비밀(2018)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 id=113686#1222121>


김대승 감독의 2005년 작 '혈의 누'는 도화도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마주하는 참혹한 진실에 대해 그린 작품입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영화적 성공과는 별개로 혈의 누는 '인간의 탐욕'을 그려내는 방식과 그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만큼은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 개봉작인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 흡혈 괴마의 비밀'은 혈의 누와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영화적 성취에서는 13년 전 만들어진 혈의 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선명탐정 : 흡혈 괴마의 비밀'은 탐정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이 의문의 연쇄 살인의 해결을 의뢰받고 강화도로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연달아 발생한 살인 사건을 보여주는데, 장르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바탕으로 탐정물이나 로맨스를 중간중간 섞은 영화입니다. 때문에 진지한 탐정물을 표방한 '혈의 누'와 살인사건을 다루는 무게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주인공 김민은 전혀 탐정의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큰 축인 '살인사건의 해결'에 완전히 손을 놓아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범인이 제공하는 단서의 제공과 함께 누구나 추리할 수 있는 정도로만 다뤄지는데, 영화의 중심을 잡아야 할 '탐정'이 손을 놓아버린 순간 남아 있는 코미디와 로맨스는 영화 속에서 뜬금없는 장면들이 불쑥불쑥 끼어드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떠돌게 되었습니다. 조선 명탐정이 하라는 추리는 안 하고 연애 개그만 한다면 '조선명어부'나 '조선명판사'라고 제목을 바꿔도 아무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 id=113686#1226669>


그나마 영화의 다른 축을 유지하는 코미디와 로맨스 역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데, 그 이유의 시작과 끝은 하향 평준화되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배우들의 연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에 정통 사극을 기대하는 관객은 한 명도 없겠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전혀 사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대사를 해서인지 '말'이 중심이 되는 코미디와 로맨스 모두 재미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주인공 월영을 연기한 김지원 씨는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준 좋은 연기들이 한 조각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모습만 보여주었고, 나름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민기 씨조차 이 작품에서는 내내 작품 밖에서 둥둥 떠 있는 캐릭터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고요. 그나마 이미 두 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김명민 씨와 오달수 씨가 코미디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두 시간 전체를 책임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표절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조선명탐정 : 흡혈 괴마의 비밀'은 단순히 이야기 구조 외에 여러 부분에서 영화 '혈의 누'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혈의 누'에서 장점이었던 요소들을 거둬내고 새로 들어간 다른 요소들이 제대로 작품 속에 녹아들지 못함으로써 조선 명탐정은 산만하고 어수선한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아쉬운 점들의 끝에서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최신작은 저에게13년 전 만들어진 어떤 작품의 낮은 수준의 복제품으로 밖에 기억되지 못할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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