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보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언제?"

더 헌트(2012)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71404#845685>


2018년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누군가에게 "Me too 운동에 동참할 뜻이 있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제외하고는'No'라고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속세의 소식과 먼 삶을 살았다고 해도 구체적인 피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작금의 현실이 모두 거짓 폭로라고는 주장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직 질문이 두 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Me too 운동에 동참한다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함께 내줄 수 있겠습니까?"입니다. 'Me too'에 동참한다고 말은 했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면 동참하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언제입니까?"입니다. 구체적인 시기를 놓고 생각해보면 누군가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폭로한 시점부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 심지어 그 이후에도 비난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Me too 운동에 동참한다면 폭로가 나온 시점부터 너무 늦지 않는 어느 시기에는 함께해야 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2012년 작 '더 헌트'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성범죄자로 몰린 루카스(메즈 미켈슨)가 겪는 무죄를 향한 사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개봉 당시에 호평을 받은 작품이고 주제의식 전달 방법부터 배우들의 연기까지 흠잡을 곳 없는 걸작인 이 작품에 대한 리뷰를 최근에 작성하게 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 영화가 주는 서늘함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관객은 성 범죄자로 지목된 사을 백안시하는 그의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보다 루카스에게 더 감정 이입하기 쉬운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관객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작품이 사건의 진실을 먼저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그래도 관객은 여전히 루카스의 편이었을까요? 같은 마을에서 십수 년을 함께 살아온 친구조차 루카스의 인간성에 대한 구체적인 시험의 순간에 왔을 때 흔들렸는데 그냥 제삼자인 관객이 의심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의 대다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Yes"라고 답하고 세 번째 질문에는 "소식을 듣는 즉시"라고 답했던 것이고, 그렇게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이 보인다"는 확신이 보이지 않는 특정인에 대한 믿음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71404#780181>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는데 저는 루카스의 범죄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실수했던 것처럼 지금 Me too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폭로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 중 일부가 무죄로 밝혀진 경우 조차 그 사람을 의심했던 지금의 판단은 여전히 일정한 근거에 의한 결정이었고,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던 결정에 대해 결과만 가지고 비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헌트를 보고 나면 과연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 중 마지막 질문이 마음에 걸립니다. 과연 소식이 전해진 즉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 말이죠. 정말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사법쳬계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서 완벽함과 거리가 먼 결정들을 무수히 내려왔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겨왔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시스템이지만 아예 시스템이 없는 것보다는 분명 진실에 대해 한번 이상의 검증 기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부족한 시스템에 대한 믿음조차 없다면 남은 것은 서로의 폭로에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 여부밖에 없고 그 와중에 가장 먼저 소외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을테니까요.

더 헌트의 결말은 진실이 밝혀진 이후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건이 있기 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루카스의 일상을 관객에게 싸늘하면서도 날카롭게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루카스에게 잘못했던 것은 거짓을 보았다는 점이 아니라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에 성급히 답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에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답했다면 이 작품의 결말처럼 개인에게 파멸적인 피해를 입히고 동시에 공동체 내부에는 불신의 균결이 남은 것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구체적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의를 떠올리기 전에 한번 정도 "지금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반문할 수 있다면, 작금의 문제를 조금은 덜 상처 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진실을 앞에 두고 주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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