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월드: 폴른 킹덤 (2018)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많은 시리즈 영화 중에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27년째 풀지 못하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는데,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91년 작 '터미네이터 2'를 능가하는 속편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3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3부터 2015년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까지 총 세편의 영화가 속편으로 제작되었고 그와 별도로 드라마도 제작되었지만 그 모든 콘텐츠들은 흥행과 비평 양쪽 측면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속편을 뛰어넘지 못했으니까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2018년 작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시간상으로는 2015년 개봉한 쥬라기 월드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속편인데, 영화의 완성도를 잠시 잊고 보면 쥬라기 공원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공룡과 인간의 사투와 1993년에서 소환된 몇몇 아이템과 공룡들이 등장을 보며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빼고 나면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은 엉성한 이야기 위에 그저 볼거리를 예쁘게 장식해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명의 존엄과 인간의 탐욕,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명 윤리의 혼란스러움 같은 커다란 주제는 전작에 등장했던 말콤 박사(제프 골드 불룸)의 입을 통해 챔피언이 의무방어전을 치르 듯 열거될 뿐이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할 주인공 일행은 눈 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급급하다가 영화의 말미에 수많은 인명과 자신들의 미래가 달린 일을 결정하는 순간에는 수수방관하는 모습만 보여주니까요.
또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에 익숙하게 보았던 티라노 사우르스나 벨로시 랩터 대신 포악하고 잔인하면서도 영리한 다른 공룡이 등장하는데, 이런 선택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터미네이터 2에서 악역이었던 T-1000 이후 T-X나 T-3000과 같은 강력하면서도 새로운 터미네이터를 계속해서 등장시킨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완성도 측면에서 악역의 강력함과는 반비례하듯 점점 하향 곡선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 등장한 악역의 강인함이나 신선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독들이 터미네이터 2편의 기록적인 성공의 원인은 T-1000이라는 새로운 터미네이터의 등장이 아니라 27년 전 영화임에도 전혀 낡은 구석이 없는 연출력에 있었다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쥬라기 월드와 속편인 폴른 킹덤 역시 쥬라기 공원 1편에서 보여주었던 경이적인 연출력의 힘을 보여주는 대신 공룡이라기보다는 괴수에 가까운 생명체를 연속적으로 등장시켰을 뿐이고요.
이미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2021년에 여섯 번째 작품의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데,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알 수없지만 적어도 저에게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걷고 있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후의 순간에 다이너마이트 한 개, 유탄 한 발로 간신히 쓰러트리는 대신 로켓포를 맞아도 쓰러지지 않게 그려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 장면이 공허하게 축포로 울리는 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