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장점으로 부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한걸음

알리타: 배틀 엔젤 (2019)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442#1291032>


전 세계에서 흥행 중인 마블 코믹스 원작의 영화들이 양지에서 활발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 비해, 그간 대부분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엉성한 만듦새와 참혹한 흥행 성적 때문에 점점 어두운 음지로 추락해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도 있고 재능 있다고 평가받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관객들이 그 무모한 도전을 눈으로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돈 많이 쓴 코스프레'와 같은 절망감뿐이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키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이 실사화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문자 그대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017년 개봉한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을 보고 나서 할리우드의 일본 원작 만화의 실사화 능력은 기대의 싹조차 가지기 어려운 수준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의외로,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2019년 작 '알리타 : 배틀 엔젤'은 '무난하다'라는 한 마디 이상의 호평을 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442#1291031>


장점에 앞서 실망스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 알리타(로사 살라자르)와 이야기의 중심에서 애절한 감정을 나눠야 할 휴고(키안 존슨) 감정적 화학작용이 느껴지지 않는 밋밋한 모습만 보여주었고, 크리스토퍼 발츠가 연기한 닥터 이도와 시렌(제니퍼 코넬리)을 제외한 다른 조연들도 '연기'라기보다는 분장하고 필요한 순간에 칠판에 쓰인 대사를 읊는 보이스 웨어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으니까요. 이처럼 인물들의 연기가 엉성해지면서 영화의 설정상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알리타 속 세계에 있는 캐릭터들은 더욱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희로애락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상태로 작품을 관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단점이 그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뿐만 아니라 완성도 낮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보편 타당한 감점 요인'이라면 알리타의 장점은 감독과 원작 총몽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인체 분해'라는 독특한 형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알리타 속 세계에서 인간들은 뇌를 제외한 인간의 몸 전체를 기계 부품으로 교체할 수 있어서 그런지 팔다리가 일상적인 일처럼 잘려나가고 심지어 머리나 허리가 분리됨에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비인간화의 극한에 도달한 처철한 사투를 벌입니다. 공교롭게도 감독인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이미 플래닛 테러나 마셰티, 황혼에서 새벽까지 같은 B급 감성의 작품에서 신체의 일부가 가학적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분해되는 장면들을 무수히 연출해 왔는데, 이 두 가지 요소가 제대로 결합하면서 알리타는 두 시간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처절하면서 속도감 있는 액션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단, 이 작품의 액션은 3D 감상에 최적화되었으니 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3D로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한때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더불어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이었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B급 감성의 영화에서는 두각을 보이고 있음에도 세계적인 감독이 된 타란티노와는 점점 큰 차이로 벌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로드리게즈 감독의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간 감독했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에서 자신의 장기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인데, 드디어 알티라 : 배틀 엔젤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바탕으로 마음대로 판을 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지금 현재는 단지 한걸음 내디딘 것에 지나지 않고 만약 이번 작품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두 번째 걸음이 향할 곳은 낭떨어지겠고, 작품 속 인물들처럼 산산히 조각나서 재기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겠지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Problem is not S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