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림에서 찾아오는 극한의 고통과 쾌락

헬레이저(1987)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crypticrock.com/this-week-in-horror-movie-history-hellraiser-1987/>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 중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은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유명인이 작성한 글, 두 번째가 이슈가 되는 사안에 관한 글, 세 번째가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글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의 경우는 사안의 격렬함과 표현 강도에 따라서는 몇천 명 혹은 몇만 명이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기 때문에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이면 한 번쯤 그런 열렬한 반응을 기대하고는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위험이 따르기도 하지만요.


클라이브 바커 감독의 1987년작 '헬레이저'는 20세기에 홍수처럼 범람했던 공포영화들 중에서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도살장 같은 풍경은 섬뜩함과 끔찍함이라는 말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처럼 지옥과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수도사들(원어: Cenobite)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미지는 만화 베르세르크나 게임 사일런트 힐등 많은 작품들을 통해 현재까지도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classic-horror.com/reviews/hellraiser_1987>


하지만 헬레이저의 진짜 매력은 퍼즐 상자로 상징되는 비틀림에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퍼즐 상자(Lemarchand's box)를 열면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들은 극한의 고통과 쾌락을 선사하지만 그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 갇히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처럼 극한의 체험을 위해서는 완전한 모양의 정육면체 퍼즐 상자를 변형시키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평범함 삶에서는 삶 자체를 비틀어야 한다는 서글픔과 공포가 퍼즐 상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 퍼즐 상태를 원상태로 돌리자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는데, 마찬가지로 비틀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예전의 평온과 안정상태로 돌아갈 수 있겠죠.


인터넷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퍼즐 상자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반응했다는 것이 고양감과 희열을 주면서 동시에 글쓴이를 억측과 오해의 바다에 빠트려 허우적대도록 만드니까요. 그럼에도 자신의 글로 주목받고 싶다는 욕망을 결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아마 그런 비틀린 욕망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쾌락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저조차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제 경우는 앞에 놓인 상자를 열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극한의 고통과 쾌락을 준다고 해도 수도사들에 의해 육체가 산산조각 나거나 모니터 밖에서 사회적으로 말살되는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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