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세상에는 인간관계로 가능한 일도 많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훨씬 많다고 봐야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삼류지요.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그런 건 내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삼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120% Cool p.48>
후쿠모노 노부유키 작가의 만화 도박 묵시록 카이지에는 돈과 무관하게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악랄하고 잔인한 일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돈과는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만하다가 결국 소설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재미없는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으니 만약 글로써 누군가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로지 자기 능력만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어떤 분야든 내가 가진 조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은 불법의 영역에 손을 대지 않는 한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의 힘에 의존하는 조건들을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려 만든 발판 위에 몸을 맡긴 체 꿈의 끝자락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는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내 발판을 만든 사람은 곧 내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니 그 발판을 버티게 하는 조건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길을 걷다 쓰러졌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은 나를 잠시 지탱해줄 뿐 길을 걷는 것은 내 몫으로 남겨둬야만 합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걷는 편이 더 안락함에 익숙해지는 것은 쉽지만 그 사람이 내 꿈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