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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05. 2021

리듬 속에 그 삶을

삶은 리듬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리듬은 심장 박동이다. 나는 소리에 관심이 많아서 생활 속 무의미한 소리들을 주의 깊게 듣곤 한다. 조금만 귀기울여 보면 지저귀는 새소리를 비롯해서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수많은 소리들이 리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소리 자체가 리듬을 갖고 있기도 하고, 우리가 받아들일 때 리드미컬하게 인식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ASMR 이 흥행하는 거겠지.


거실 바닥에 슬리퍼를 끄는 소리, 비스킷을 씹는 소리, 커피를 홀짝거리는 소리, 설거지할 때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 머리를 긁는 소리, 얼굴 만지는 소리, 산책할 때 지면과 부딪히는 내 발자국 소리,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 심지어 소변보는 소리까지 다 리듬이 있다.


여러분이 음식을 씹을 때 과연 박자에 맞춰 씹는지 한번 주의 깊게 들어보라. 비스킷을 하나 먹고 다음 비스킷을 먹는 사이 여러분은 박자에 맞춰 그 짧은 시간에 쉼표를 넣고 있을 것이다. 냠냠짭짭 한 마디, 온음표 한 마디 쉬고, 냠냠짭짭 한 마디. 이런 식으로.


산책은 말할 것도 없고, 자녀들과 다투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도 우리는 리듬을 타고 언성을 높인다. 4/4박자 지휘를 하면서 가상으로 언성을 높여 보라. "그래서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제 와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아, 정말 짜증 나!" 4/4박자 세 마디 안에 들어가는가?


대면하거나 대화할 때 뭔가 나를 편치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의 눈빛(눈의 깜박임 등)이나 말투, 억양이 리듬을 타지 못하거나 그 사람이 나에게 생소한 리듬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안정감을 느끼는 BPM(음악의 속도) 있는데, 매우 빠른 댄스곡을 신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곡을 들어도 상황에 따라 -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는 지나치게 빠른 댄스곡이나 강렬한 락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정을 불안하게 만든다 - 다르게 느낀다.


보통 상대방의 눈빛이 불안하다고 느낄 때 가장 가시적인 이유는 눈 깜박임이나 시선 처리가 불규칙적이란 점, 즉 리듬을 타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심리가 불안정한 상태일 수도 있고, 성장 환경에 의해 습관으로 굳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소음에 리듬을 부여한다. 리듬이 안 맞거나 충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3~4분 길이의 대중음악을 감상하는 사이 한 두 마디마다 박자와 리듬이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매우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이 돼서 그 음악을 빨리 끄고 싶을 것이다.


자연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시각적인 것도 자연스러운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는 물론이고 몸통, 줄기, 잎으로 이어지는 나무의 형태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리듬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뭔가 불안·초조하거나 혼돈 속에 있는 사람은 본인의 리듬을 잃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직한 직장의 업무 때문이든, 가족이나 연인 등 인간관계 때문이든 어떤 무언가가 계속 내 삶의 리듬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인의 리듬은 본인만이 알기 때문에 여러 방법을 통해 본인만의 리듬감을 되찾아야 한다. 우선 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삶의 박자가 4/4 박자인지, 6/8 박자인지, 12/8 박자인지를 생각해 보고 BPM 또한 내 스타일의 BPM을 찾아야 한다.


말이나 행동이 매우 센스 있다, 엣지 있다 이렇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말투, 억양, 제스처에서 당김음을 쓰는 사람이다. 당김음이란 규칙의 틀 안에 있는 불규칙이랄까. 예를 들어 "내가 그날 그 옷을 입었더니 말이야"란 말을 할 때, 모든 단어를 같은 길이로 하면 당연히 지루하다. "내가 그날"을 약간 빠르게 뱉은 후, 잠시 텀을 주고 "그 옷을..." 이렇게 말하면 그날에 대해 상상할 시간을 잠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글도 이렇게 긴장감 있게 쓰시는 분들이 많더라. 밀당을 잘하면서 말이다.


마음에 둔 이성에게 호감을 사고 싶을 때는 눈을 깜박이거나 귀밑머리를 넘기거나 커피를 저을 때도 리듬감을 부여해 보자. 소음도 적당히 활용하자. 당김음을 적당히 쓰면서 3분 안에 결판을 내는 대중음악의 리듬처럼, 당신의 짧은 말과 동작이 조금 더 매력 있게 느껴지도록.


지인과의 통화 주기나 통화 시간도 마찬가지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통화 주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인데, 매일 전화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10분 미만의 통화가 편한데, 전화통만 붙들면 나를 놓아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딱히 나쁜 사람이 아닌데도 폰에 그 사람 번호가 뜨면 받기가 싫어진다. 그러니까 상대방과 진정 가까워지고 싶다며 우선 그 사람 삶의 리듬을 파악해야 한다. 우선은 그 사람의 리듬에 침범하면 안 된다.


별 것 아닌 일로 계속 다투는 부부도 리듬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각자의 음악 취향이 다르듯이 우리 삶의 리듬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상대방 삶의 리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 사람이 어떤 리듬에 예민해지고 어떤 리듬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말이다.


리듬이란 틀 안에서 삶을 생각해 보면 생각거리들이 많아진다. 같은 높이의 음을 끊지 않고 계속 소리 내면 듣는 사람이 매우 힘들어진다. "삐"하는 고주파음을 생각해 보라. 반면 대중음악에서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주로 같은 음의 반복이 많다. 편승엽의 노래 <찬찬찬>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찬찬찬" 중 "찬찬찬"이 동음 반복이다. "부딪히며"도 "히" 빼고 같은 음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반면 일정한 텀(쉼)을 두고 하는 반복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우리를 발전시킨다.


모든 대조·대비도 리듬이다. 해가 뜨고 진다. 자고 눈뜬다. 먹고 싼다. 말하고 침묵한다. 웃고 운다. 남자와 여자. 밀물과 썰물. 해와 달. 섰다 앉았다.




삶의 리듬 곡선을 잘 타자. 상승 곡선을 그리자. 당장은 좀 서툴더라도 리듬감 있는 반복을 통해서 삶이 부여하는 리듬에 잘 올라타자. 파도의 리듬을 즐기는 능숙한 서퍼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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