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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r 26. 2021

피아노 한 곡 완곡의 의미

삶의 과정과 이리도 닮았구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보다 능동적인 즐거움이다. 


몸을 움직여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다시 내 귀로 듣는 것은 몸속 세포들의 유기적인 순환이다. 마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메이저리그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훨씬 수준이 낮더라도 동네 야구단에서 뛰는 또 다른 기쁨을 만끽하는 것과 같다.


이번에 도전한 곡은 그 유명한 <캐논>이다.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 말이다. 전자기타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Mr. Crowley>를 쳐보고 싶듯이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Canon>을 쳐보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Easy 버전 캐논이 있고, <차차와 피아노 놀이> 유튜브 채널에 악보와 영상까지 있어서 따라하기로 연습할 수 있었다.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앨범에 수록된 원곡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유명한 '솔파솔 솔파솔 솔솔라시도레미파' 부분을 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희열이었다.


쉬운 곡이든, 어려운 곡이든 한 곡의 연주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풀어보았다.


즉흥 연주가 불가한 나 같은 피린이(?)는 우선 이 곡이 내가 칠 수 있는 곡인가를 가늠하기 위해서 악보를 봐야 한다. 오른손은 높은음자리표, 왼손은 낮은음자리표 보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16분 음표와 쉼표가 난무하는 등 악보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곡이 아니라 내가 도전해 볼 만한 곡이라는 판단이 서면 연습을 시작한다.


쉬운 곡은 4마디씩, 어려운 곡은 2마디씩 연습하는데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 연습한다. 오른손으로 우선 멜로디의 전반적인 뉘앙스를 익힌다. 머리로는 곡의 느낌을, 손가락은 손가락이 가야 할 길을 익힌다.


왼손은 오른손 멜로디를 받쳐주는 지지대, 기둥 같은 역할인데 보통 멜로디에 어울리는 코드 구성음을 짚어주는 경우가 많다. 왼손은 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강하게 치기보다는 든든한 백그라운드 같은 느낌으로, 멜로디를 잡아먹지 않게 쳐야 한다.


오른손과 왼손 연습이 독립적으로 완성되면 이제 완성된 양손의 연습을 합쳐야 한다. 즉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쳐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오른손과 왼손 연습이 따로 완벽하면 동시에 쳐도 금방 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게 만만치 않다. 뇌가 특정 구간마다 오류를 일으켜 나도 모르게 틀리게 된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고 양손이 자연스러운 콤비네이션을 이룰 때까지 반복 연습한다. 이렇게 2~4마디가 완성되면 다음 마디 연습으로 넘어간다.


앞 4마디와 같은 방식으로 다음 4마디를 연습한다. 그다음엔 또 다음 4마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의 네 마디와 합쳐서 8마디를 연습해야 한다. 너무 멀리 가버리면 제일 앞의 4마디 연습한 것이 뇌와 손가락에서 조금씩 증발하기 때문에 그전에 각각 연습한 4마디씩을 합쳐서 8마디를 익숙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해서 칠 수 있을 때까지 한편 지루하기도 한 연습을 반복한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전자기타 애드립이든, 피아노 멜로디든 듣기만 할 때는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나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쳐보면 '왜 손가락은 다섯 개 밖에 없으며, 피아노 건반은 또 왜 이리 멀거나 가까운 건지' 원망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래서 피아노 한곡을 완곡하는 것은 삶과 비슷하다. 남들의 삶이 보기엔 쉽고 만만해 보여도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대부분 타인의 삶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될 것이다.


곡 전체를 연습해 보면 반드시 어려운 구간이 있다. 손가락이 계속 꼬이거나 박자를 놓치게 되는 구간이다. 이런 구간은 템포를 원래보다 더 늦추어 놓고 연습해야 한다. 박자가 자꾸 어그러지면 메트로놈을 켜놓고 한다. 완성 직전에 곡에 감정을 실어 녹음할 때는 메트로놈 소리가 감정 이입에 방해가 되므로 나 같은 경우는 메트로놈을 끄고 녹음한다.


이것도 참 인생과 닮은 게 우리 삶도 매 순간 어려운 고비가 있지 않은가. 어려운 구간의 속도를 늦추고, 다른 구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완성하지 않고는 아름다운 곡 전체를 연주할 수 없듯이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구간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틀리지 않게 연주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그다음 순서는 감정 이입이다.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틀리지 않게 쳐 봐야 듣는 이에게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고, 무미건조한 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감정 이입은 원곡을 흉내 내도 되지만 나만의 감성을 싣는 게 더 좋다. 흔히들 말하는 곡 해석이다. 


<캐논 변주곡>을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는 설레는 느낌으로 쳐도 좋지만, 봄 햇살 앞에 왠지 쓸쓸해지고 아련해지는 느낌으로 쳐도 좋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손가락 터치의 강약, 부드럽게 이어 치거나 끊어 치는 등의 기교, 페달 등을 이용한다.


이 과정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든다. 내 감정을 내가 듣기에 흡족할 정도로 악기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들의 연주을 많이 들어서 귀는 높아질 데로 높아져 있지만 내 연주 실력은 유치원생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튜브 등에 연주 녹음본을 올리려면 최소한의 퀄리티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용서가 되는 수준까지는 연습을 통해 끌어올려야 한다. 


이렇게 완곡을 해서 녹음까지 마치면 작곡용 스피커와 휴대폰과 카오디오 모두에서 들어본다. 소리가 찢어지거나 너무 작지는 않은지, 소음이 심하게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등 신경 쓸 게 많다.


드디어 완료다. mp3로 완성된 내 연주를 한동안은 스스로 만족하며 자꾸 듣게 된다. 내가 쓴 글을 '음,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럴듯해' 하면서 자꾸 들여다보듯이 말이다. 스스로 자꾸 듣게 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힘들인 노고에 비해서 내 연주를 관심 가지고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든, 인스타든, 오디오클립이든 인싸가 아닌 이상 업로드해봐야 조회수가 금방 100을 넘기는 힘들다.


그런데 왜 이런 힘든 과정을 반복하냐고? 꼭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야 당연히 신나겠지만, 연습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만족감도 있고 완성된 후에는 하나의 작은 '아름다움'을 완성했다는 뿌듯함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튜버 신사임당(주언규)님의 <킵 고잉>이란 책을 읽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 작은 단위로 쪼개서 계속 실행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실행해야 도전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도전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면서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 운도 따라 주면서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쇼핑몰을 예로 들었지만 삶의 전반이 다 같은 원리인 듯하다.


어려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왼손, 오른손 동시에 치겠다고 덤비면 수일 내로 포기하게 된다. 과거에 내가 그런 이유로 여러 번 피아노와 기타를 포기했다. 잘 치는 사람들의 멋진 동영상을 보면 나도 얼른 그렇게 치고 싶으니까. 아무리 그래 봐야 조급한 마음 가지고는 되는 일이란 없는 법. 


그렇게 하다가 포기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 '그래, 역시 난 소질이 없어. 그냥 세상에 널린 재능 있는 연주자들의 멋진 음악을 감상만 하자. 내 주제에 무슨...' 머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데, 마음은 뭔가 찜찜하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결실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찜찜함으로 끝낸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소질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계속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근자감이 그 단어의 뜻과는 다르게 상당히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는데 마음속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오만이나 착각이 아닌 이상 내 속에 그와 관련된 세포와 영감이 있다는 뜻이다. 


음악과 글쓰기로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면서 아주 조금씩 기회들이 생기고, 상도 받고, 가능성이 보이면서 점점 이런 확신을 갖게 된다.


하려고 하는 자, 하는 자는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정말 재능이 있게 된다. 재능이란 게 단순히 타고난 어떤 것, 빨리 발현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은 1차원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것을 재능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그것은 어느새 정말 나의 재능이 되었다.'




저와 함께 두 마디 혹은 네 마디씩, 왼손·오른손 따로 당신의 도전을 계속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느린 듯해도 이게 은근히 재미가 있답니다. 하다 보면 의외의 수확도 있구요. 우리 인생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한 곡'을 완성해 보자구요!!!



https://youtu.be/wVFykRvhg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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