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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06. 2021

끌려다니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법

볼모로 잡힌 욕망

개가 목줄이 채워진 채로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야생에서 먹이와 잠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을 볼모로 잡혔기 때문이다. 자유와 안락함을 맞바꾼 것이다. 개와 사람의 관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최근에 어떤 상담 앱 관계자에게 제안이 와서 상담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주로 연애 상담인데, 몇몇 사례들을 상담하면서 끌려다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헤어졌는데 전화가 오면 다시 만난다거나, 카톡·문자를 차단해 놓고도혹시나 하며 차단된 메시지함을 확인한다. 마음으로는 이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아직 몸이 끌려다닌다. 인성이 X이고, 나이에 비해 철도 없고, 심지어 이성 관계가 문란하다. 그런데도 잘 생겼다거나, 몸매가 이상적이라거나, 내 요구를 잘 들어준다거나, 잠자리가 만족스럽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끊지 못한다.


일종의 중독이다.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처럼.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그 사람이 일정 부분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므로 내가 갉아먹히고, 자존감이 계속 하락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계속 만난다. 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정한 친구도 아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다. 쉽게 말해 그는 나를 이용하는 것이고, 나는 알면서도 그에게 발린 꿀을 빠는 잠깐의 쾌락에 나의 소중한 자존감과 시간과 에너지를 갖다 바친다.


직장에서는? 잘릴까 두려워 상사의 지시에 끌려다닌다. 눈 밖에 날까 봐 가기 싫은 회식자리에 참석하고, 부당한 지시도 내게 큰 대미지가 없다면 모른 체하고 따른다. 마치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 한마디에 안절부절못하고, 그 한마디의 의미를 혼자서 고민하거나 확대 해석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점점 커 보이고 나는 점점 작아 보인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를 잘 만나서, 운이 좋아서 저 나이에 저 위치에 있고, 나는 흙수저인 데다가 게으른 젊은 날을 보내서 지금 이렇게 사는 것 같다. 끝없는 자존감 추락에 우울하고 짜증 나고 사는 게 비참한 기분이 든다. 쉬는 날도 출근할 생각에 쉬는 것 같지 않다. 이 모든 것은 필요악 같은 존재인 월급을 직장에 볼모로 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원망스럽다.


끌려다니는 관계가 극단적으로 변질되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이비 종교와 그 교주에 홀릭하기도 한다. 사람의 인지 기능은 참 묘한 것이 매우 비정상적인 일(폭력, 학대 등)도 어제 겪었던 걸 오늘도 겪으면 반복되는, 있을 수 있는, 보통의, 평범한 일상으로 착각을 할 수 있다. 폭력 남편의 그늘에서 수십 년을 사는 아내나 소금밭에서 반평생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답은 사실 간단하다. 본인도 알고 있다. 해답을 향해 가는 실행 목록의 첫 번째는 과감히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죽을 것 같거나, 삶이 재미없을 것 같거나, 너무 허전할 것 같은 그 욕망. 그걸 버려야 한다. 버려도 죽지 않는다. 빈손이 되어야 새로운 걸로 채울 수 있다.


끌려다니는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저당 잡힌 그 욕망 때문에 이미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처절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계속 가다가는 내 삶 전체가 썩어 문드러지겠다는 자각 말이다.


이상형에 꽂혀 있으면 더 매력 있고, 선하고, 배려심 깊은 이성을 볼 수 있는 눈이 닫혀 버린다. 내 스타일만 고집하면 더러운 성격과 인성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독립심이 강해져야 제대로 된 이성이 제대로 보인다. 눈이 맑아진다.


두려움도 욕망에서 비롯된다. 놓칠까, 망할까, 고생할까, 외로울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운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 편이다. 훌훌 털고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면 새로운 인연과 기회와 운이 우리를 찾아온다. 끌려다니는 위치에 있다고 나를 약자라고 동정하지 말자.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는 비겁한 약자다.


그 욕망에 대해 정말 당신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그 욕망이 뭔가 찜찜하고, 나를 불안하게 하고, 산뜻한 일상을 망치고 있다면




과감히 놓아서 버려라.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라. 운명은 당신 편이다. 당장은 힘들어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결국 당신은 잘될 것이다. 당신의 자존감을 잘 지켜내고, 스스로의 삶에 정직해진다면 말이다.


※ (익명으로) 고민 상담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연락 주세요. 정답을 드릴 순 없고,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어요.


zeir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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