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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01. 2021

육체노동과 병원

정말 먹어봐야 똥인지 압니다

사흘 전 아침에 택시에서 내려 걷자마자 갑자기 허리가 아팠다. 조금만 자세를 틀거나 구부리면 엄청 아팠다. 나는 병원과 의사를 안 좋아하는지라 - 성의껏 진료하는, 고생하는 의사님들께는 죄송하다 - 3일간 버텼다. 그러나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데다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오늘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항을 떴다.


원인은 척추기립근에 무리가 온 거란다. 신설 병원에 젊은 한의사라 그런지 모니터 화면에 이미지를 띄워놓고 아주 술술 잘 설명해준다. 경험이 무기인 관록의 한의원과 최신 이론과 장비를 갖춘 신예 한의원 중 후자를 택했는데, 일단은 잘한 것 같다.


나는 작곡과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하루 네 시간만 일하는데, 오전만 일할 수 있는 알바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지만, 현재 내가 가진 능력과 경력으로는 어려웠다. 결국 몸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하는 일은 네 시간 꼬박 서 있어야 하는 일이다.


장시간 서있는 것도 척추에 무리를 주는데, 내가 서있는 곳이 약간 경사가 있다 보니 더욱 무리가 온 거란다. 사실 두 달 전에 발바닥과 다리가 많이 아파서 직장(알바)을 옮겼었다. 옮긴 직장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오전 오후 두 파트로 나뉘어 내 시간 쓰기가 참 애매했다. 중간에 쪼가리 시간이 비다 보니 어영부영 하루가 다 가버리는 게 단점. 게다가 점심 식사 제공을 안 해주니 밥도 셀프도 챙겨 먹어야 해서 시간을 더 뺏기게 되고...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전 직장에서 다시 와달라는 전화가 와서 '아, 이게 하늘이 뜻인가'하고 다시 갔다. 그런데 서 있는 일 때문에 척추기립근에 무리가 가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다니... '참, 서글프네!'


경제 유튜버나 관련 책들을 보면 돈 파이프라인(돈줄)을 만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파이프라인을 만들 만큼 영리하지 못하거나, 아직 그럴 능력이 안 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몸을 써서 돈을 번다. 그나마 책상머리에 앉아서 버는 족속은 몸이 덜 고달프지만,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족속은 몸이 많이 고달프다.


나는 병원도, 한의원도 거의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도 화이트칼라는 아니었지만, 고장 날 만큼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몸을 혹사시켜 고장이 자주 나는, 육체노동을 하는 분들의 심정을 몰랐다. 


내가 오늘 한의원을 나오면서 처음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연로하시지만 여전히 생계를 위해 육체노동을 하신다. 쉬어야 할 나이에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수시로 고장 나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늘 측은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가 겪고 보니 그 고통이 딱 와 닿는다. 그 전 마음은 가짜였다.


매스컴을 통해 학교폭력, 가정폭력, 극한직업의 예들을 보면 '힘들었겠구나,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 고통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실제로 겪어보는 거랑은 천지 차이다.


내가 작곡과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힘든 네 시간 알바를 고수하고 있듯이 힘든 육체노동을 이어가는 모든 분들이 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몸이 약해서, 나이가 많아서 힘이 들지만 버티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몸을 써서 푼돈(부자들에 비해)을 번다고 해서 어찌 그분들을 비웃을 수 있을까. 돈 파이프라인이 없다고 해서 어찌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카드값으로 다 사라지는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척추기립근은 고통을 받고, 그래서 좀 우울하다. 하지만 나는 육체노동이라는 비슷한 군에 속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늘은 그분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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