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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25. 2021

다리가 아프다, 발바닥이 불난다

알바가 내게 주는 짜증과 고통

거의 1년이 다 돼 가지만, 네 시간을 영락없이 서서 해야 하는 현재의 알바 때문에 매일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에 불이 난다. 


'이 나이 먹도록 뭘 했기에 지금에 와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어찌 들지 않겠는가. 비록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필히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있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관점 1.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알바를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될 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다. 자업자득.


- '못했다'는 과거형 동사 때문에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자책은 자신을 향한 폭력이다. 자책이 아닌 반성이 필요하다. '반성'은 하루 동안 하고 끝나는, 끝내는 게 아니다. 계속 가져가는 것이고, 발전의 과정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관점 2. 

신은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는가?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는가?


-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고통마저 감내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중 하나인 육체적 고통을 거부하고 짜증스러워한다면 무엇을 진행할 수 있으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즉 이 또한 나에게 주어졌다면 감당해야 하리라.


관점 3. 

안 아플 순 없지만 덜 아플 순 있다. 


- 알바로 인한 육체적 고통 말고도 케어하지 않으면 고통으로 다가오는 삶의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 아프고자 하는 욕망은 완벽을 꿈꾸는 어리석음이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교만이다. 없애는 것보다 줄이는 게 먼저다. 이것이 삶의 구조이자 원리 아니겠는가.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자.


관점 4. 

관점 1의 반성이 제로 시계에서 플러스 시계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작은 노력을 계속하자. 


- '못했다'는 '못할 것이다'와 동의어가 아니다. '못했다'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듯 '못할 것이다'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도 결국 하루하루가 쌓여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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