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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31. 2021

허무한 아집을 볼 줄 아는 눈

당신은 아집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집[] :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표준국어대사전). 한자로 나 아() 자에 잡을 집() 자다. 나를 잡고 놓지 못하는 것.


아집은 나와 주위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쓸모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한다. 소통을 단절시킴으로써 불화를 일으킨다.


이전에 싱크대 수도꼭지를 고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끝끝내 억지로 용을 쓰다가 새 제품을 망친 적이 있다. 제품만 망친 게 아니라 사소한 그 일에 (좋은) 에너지도 소진해 버렸다. 부정적 에너지(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정말 짜증 나!)는 더 크게 키우면서. 그뿐인가? 수도꼭지 때문에 날아가 버린 소중한 내 시간은 어디 가서 보상받나? 보상은 없다. 그냥 내 인생에서 증발한 거다.


사소한 일에 끝을 보려는 집착은 개인적인 아집이다. 사소한 기싸움이나 언쟁에서 상대를 꼭 이기려는 고집은 사회적인 아집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야채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같은... 특히 나는 김치에 집착했었다. 김치를 그토록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대단한 강압으로 꼰대가 되어가며 꼭 먹여야 했을까. 김치가 무슨 음식의 신이라도 돼서 경배라도 드려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 고집이 아니라 정당한 의사 표현이었겠지 - 버릇이 없고 아빠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권위가 아니라 아집 아니었을까.


이전에 웹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컴퓨터를 고칠 때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밤을 새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코딩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지?' 하면서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구글 검색을 한 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면 끝도 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밤을 새우는 과정 중에 문제가 해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포기하고 다음날 다시 살펴봤을 때 의외로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런 개인적이 아집도 시간과 에너지 도둑일 뿐 내게 유익을 가져다준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 저녁엔 반드시 치킨을 먹어야 해' '오늘 내가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았으니 폭식을 해서 풀 거야' '그 문제에 대해서 남편(아내, 애인)과 오늘 밤에 반드시 담판을 지어야 해. 결론을 내야 해. 끝을 봐야 돼'


아집도 관성이 있는 듯하다. 일단 시작하면 이 관성도 커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대의 시비나 짜증에 처음 한 번을 참지 못하고 욱하는 마음으로 대응을 해버리면 판이 커진다. 키워봐야 백해무익한, 부정적 기운이 가득한 판을 스스로 키우는 격이다.


돌이켜 보면 '그땐 정말 그게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었다'라고 생각했던 욕망의 표출들도 '과연 그랬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편향된 - 혼자만의 확신, 착각 - 아집들이 많았던 것 같다.


치킨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아도 피크타임이 지나면 욕망의 강도는 떨어진다. 한풀 꺾인다. 그러니 순간순간 차오르는 나의 어떤 욕망들이 무익하고 유해하다고 마음 한편에 느낀다면 아집의 골든타임을 잠시 모른 체 하자. 절정기가 조용히 지나가도록. 오늘 밤 치킨을 먹지 않아도 안 죽는다. 서운하고 억울하겠지만 그 마음도 하루 이틀 지나면 옅어진다.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유명한 말이 생긴 것 아니겠나.


40이 불혹이고, 50이 지천명? 희망사항일 뿐이고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사소한 유혹들은 천지에 널렸고, 하늘의 뜻은커녕 내 뜻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나 자신의 아집을 볼 줄 아는 눈, 그런 안목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아집인 줄 알아야 그것에게 자꾸 빌미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짓을 줄일 수 있다. 시간은 마트 가서 사 오는 것도 아니고, 은행 가서 빌려오는 것도 아니라서. 이미 주어진 것이라서. 도둑맞지 않도록 잘 보관하고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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