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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08. 2022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인다

갉아먹기 전략

출근길 언제나 몸과 마음이 바쁘다. 신호 하나를 받고 못 받고에 따라 5~10분 정도 차이가 나고, 이에 따라 지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은 엘리베이터가 내가 사는 층 부근에 와 있고, 신호를 대기하자마자 녹색불로 바뀐다. 반대의 경우는 엘리베이터가 이미 내려가는 중이라든지, 녹색불을 보고 달려가도 곧 적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길로만 다닌다. 신호를 받지 못하면 단지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직장에 출근한 지 3개월 만에 두 개의 새로운 길(경로)을 알아냈다. 신호를 놓쳤을 때라도 5~10분을 단축할 수 있는 거리였다.


재밌는 사실은 출근한 지 2~3주만에는 다른 길을 탐색할 생각 자체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을 반복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습성, 어리석음 같다.


물론 10~20분 더 일찍 일어나면 다 해결될 일이라 이런 탐색(길 찾기)이 무의미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세상일엔 의외로 이런 에지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새직장에 출근한 지 3개월이 다 돼가는 시점에 내가 체를 대체할 2개의 새 길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 전까지 일정기간의 어리석은 반복은 필수 혹은 필연인 것 같다.


화성학을 공부하려고 뽀대 나게 <백병동 화성학>을 사서는 첫 페이지 몇 장에서 끙끙대고 난 후에야 쉽게 풀어쓴 다른 책, 유튜브 채널을 찾는 식이다.


하지만 역시 퇴사를 해버리면, 그 길을 갈 일이 없어지면 새길을 찾을 가능성은 없어진다.


그러니 현재 내가 도모하는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고, 진전이 없는 것 같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스스로 미련스러워 보여도 그 반복이 새로운 모색, 탐색의 기반이 된다.


복잡해 보이는 코드가 적힌 악보를 보고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리면 처음엔 골이 지끈거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쳐보면 1절과 2절이 같은 코드의 반복이고, 표기된 코드명은 다른데 누르는 건반 위치는 거의 같은 코드도 꽤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롭고 놀라운, 부담을 덜어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도 2차 장벽에 부딪치는데, 원하는 위치에 손가락이 금방금방 이동하지 못하고 헤매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럴 때는 잠시 차를 한잔 마시든지, 아내와 드라마 얘기를 하든지 해서 주의 환기, 감정 - 잘 안된다는 짜증,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 하는 자책 - 전환을 한 후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러면 이전보다는 손가락이 제 위치의 건반을 제법 잘 찾아간다. 뇌에서 새로운 사실을 인지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수이고 중요 것 같다.


이것이 내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터득한 요령이다. 포기하지 않되, 텀을 두고 작은 구멍이라도 계속 공략해 보는 것.


처음 선택한 화성학 교재가 이해하기 어렵다면 여러 저자의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는 것, 오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내일 기상 후 바로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는 것, 블로그와 이미지와 영상 등 여러 매체 도구들을 활용하는 것.


이것은 비단 출근길 지름길 찾기나 음악 배우기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 전반이 같은 원리 아닐까.


고질병 해결하기, 경제적 시간적 자유 얻기, 틀어진 가족관계 회복하기, 꿈 실현하기 등의 높은 벽을 허물려면 우선 미련한 반복이 기본적으로 깔려야 한다. 지혜란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라 동거동락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같다.




이 갉아먹기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멘토 작곡가님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세 곡을 만들 때마다 딱 한 가지만 바꾼다는 미음으로 작업해 보세요. 그러면 점점 나은 곡을 쓰게 될 겁니다"


그렇다. 딱 한 가지다. 이전 곡에서 안 써본 코드 하나, 리듬 하나, 다른 방식의 가사 한 줄.


삶이 감옥처럼 갑갑하고 답답하다면 더욱 갉아먹기 전략이 중요하다. 폭발해선 안된다. 화를 폭파시키면 나도 심하게 손상된다. 배가 무지막지하게 고프다고 해서 햄버거와 치킨과 피자와 콜라를 허겁지겁 먹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말자. 잘 지은 밥과 소화 잘되는 한식 반찬을 천천히 잘 씹어 먹어도 배고픔은 해소된다.


나를 상황 속에 밀어 넣고 학대하지 말자. 미련해 보고 느려 보여도 당신의 처음 믿음대로 Try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보이고, 열리고, 숨통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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