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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독서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통찰을 위한 선순환의 삼각형

by 밤새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통찰이 필요하다. 통찰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안으로 향하는 - 내 생각을 심도 있게 관찰, 점검하는 - 통찰과, 밖으로 향하는 - 타인과 사회, 세상을 바라보는 - 통찰이다.


통찰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깊이 있는 생각의 재료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관찰, 독서를 통해 생겨난다. 오디오와 영상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활자에는 활자만의 권위가 있다. 우리는 활자 세상에서 태어나 활자로 공부하며 자랐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활자에 권위를 부여해 왔다. 남이 쓴 글이든, 내가 쓴 글이든 생각이 일단 텍스트로 표현되고 나면 그것은 권위를 갖는다. 그래서 독서와 더불어 글쓰기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독서를 하면서 핵심 구절에 형광펜을 긋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베껴 쓰거나 감상문을 적는 것은 또 다른 가치로 연결되는 매개체다. 쓰는 행위는 우리를 더 심도 있는 생각으로 인도해준다. 그 생각은 다시 다른 책에 대한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생각과 독서와 글쓰기는 통찰을 위한 선순환의 삼각형이라 할 수 있다. 통찰이란 보통의 생각과 관습과 본능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통찰은 의심에서 시작된다. 과연 지금껏 생각한 것이 맞는가? 내가 믿었던 것의 기반이 혹시 모래성이 아닐까? 평온한 아둔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고 연구하고 공부해도 신처럼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지혜의 신이 되기 위해서 통찰을 갈고닦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짐승보다 어리석지 않기 위해서 통찰이 필요하다. 즉 손실회피를 위해서 통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헤엄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물살에 떠내려가듯이 생각하지 않는 삶, 통찰이 없는 삶은 부정적 해초들이 우리를 덮어버리는 삶이다. 삶이란 가만히 있으면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다.


8시간 풀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TV 보고, 맥주 한잔 하고, 자는 생활의 반복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뭐라도 생각해고, 읽고, 써야 한다. 당신 삶이 현재 만족스럽지 않다면 말이다.




잘 쓰기보다는 우선 나를 위해서 쓴다. 내 생각의 허영과 부당함과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제대로 정리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쓴다. 그래야 변화할 수 있다. 내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면 내 글이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많은 글(책)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면 우리도 마땅히 도윰을 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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