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고, 일의 성패에 있어서 강력한 의지가 참 중요하다고 믿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이런 게 주류 사상이었던 것 같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언뜻 듣기에는 다 좋은 말이다. 긍정적인 말이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 말들은 폭력적인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상당 부분 운이 좌우하는 세상사에서 뭔가를 해서 된(이룬) 사람들이 자기들의 성공 요인이 과거 자신들의 어떤 행동이나 습관이나 지혜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자랑을 한다. 이런 콘텐츠로 책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강연을 한다.
이런 콘텐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지며 성공한 그를 따라 하려 애쓴다. 하지만 대부분 그처럼 되지 못한다. 그러면 자기의 의지나 재능이 부족해서라며 자책하기에 이른다. '하면 된다'는 말은 '나는 해도 안된다'라는 결론을 유발한 수 있다는 측면에서 폭력적이다. "너는 왜 몸에 좋은 야채를 안 먹냐"면서 아이에게 강압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도 안 되는 사람에게 "그냥 닥치고 계속 해"라고만 강압하는 것은 폭력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많이 다그친다. 해도 안 되는 사람에게는 되는 방법(디테일한 기술)을 가르쳐주고 가능성에 근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부부가 음악가인 집안에서 음악가가 나오고, 부부가 교사인 집안에서 우등생이 나온다. 환경은 나약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에게 참으로 중요한 요소다. 기술은 또 어떤가. 택배 박스를 여는데 칼이 있고 없고의 차이 정도 된다. 물론 기술이 있고, 환경이 조성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운은 필수다.
이제 성인이 된 당신과 나에게는 환경을 조성해 줄 누군가가 따로 없다.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하듯이. 기술을 다이렉트로 단번에 전수해 줄 삶의 은인 같은 사람도 영화에서처럼 나타나진 않는다. 장님이 코끼리 코 찾아가듯 힘들어도 스스로 더듬더듬 찾아가야 한다.
'독한 마음먹고 주식 투자합니다' 이런 말이 웃긴 건 주식 투자에는 강철 같은 의지보다는 공부, 조사, 관찰, 통찰 이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철 같은 의지'의 또 다른 단점은 사고를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열린 시각보다는 하고 안하고의 편협하고 피곤한 흑백논리에 사로잡힌다.
그렇다고 의지가 만고 쓸데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좀 더 개방되고 유연하면서 운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러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세련된 의지가 필요하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때가 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겐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의 기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잘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스스로에게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의 자책은 그나마 있던 재능과 가능성마저 주머니에 넣어 버리거나 심지어 시궁창에 버리게 만든다. 성공한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운이 있었다면 나에겐 나의 운이 있다.
기다리면서 갈 길을 가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길이, 나의 꿈이 사소한 스트레스 때문에, 누군가의 무심한 도발 때문에 엉망이 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도화지에 선을 좀 잘못 그었다고 찢으면 안 된다. 계속 그리다 보면 잘못 그은 그 선이 완성된 그림의 개성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인생이란 도화지는 딱 한 장뿐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