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적 자아 측면에서 본 삶의 만족도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얼마나 만족스러우신가요?

by 밤새

만족스런 삶을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삶의 만족도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해봐야 한다.


굳이 '감정적 자아'란 표현을 쓴 것은 이성적 자아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성적 자아 측면에서의 삶의 만족도란 오늘 하루를 계획대로 잘 살았는지, 어떤 충동이나 유혹에 빠져서 하루를 허비하지 않았는지 하는 부분이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는 생각보다 사소한 유혹들이 많다.


마트에 가면 이것저것 사고 싶고, 인터넷 쇼핑을 시작하면 범위가 자꾸 확장된다.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는 작품 수는 끝이 없고, 멜론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들도 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자제력이란 걸 발휘해야 한다. 이렇게 자제력을 잘 발휘해서 해야 할 일들을 무사히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우리의 이성적 자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만족을 한다.


이성적 자아가 만족을 하는데도 마음이 공허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왜일까? 감정적 자아는 미래나 계획 따위는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감정적 자아는 '생산적'이란 말을 비웃는다. 수많은 자동차와 플라스틱 제품이 끝도 없이 생산되어 지구를 오염시키는 걸 보면 '생산적'이란 말은 한편으로 비웃음을 받을 만한다.


감정적 자아는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 내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야 한다. 친구와의 수다나 커피 한잔 같은 '생산'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이 이런 만족을 준다.


아내도 최근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맥주 한잔 하며 수다 떠는 모임을 못 가져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고 한다. 나는 하루에 해야 할 피아노 연습량과 독서와 운동시간을 모두 채웠는데도 공허하게 잠자리에 들 때가 많다. 무엇이 부족할 걸까?




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이 간판부터 왠지 꾀죄죄한 느낌이다. 식탁에 앉았는데 파리가 날아다닌다. 전반적인 식당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카운터 구석에는 신문지 같은 게 쌓여 있다. 이러면 벌써 기분이 잡친다.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와 버리면 음식이 아무리 맛있었도 찝찝하다.


맛도, 청결도 기본 이상인데 주인이 되게 쌀쌀맞은 식당도 있다. 주인은 스스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은데, "반찬 좀 더 주세요" 하기도 머뭇거리게 되는 그런 식당. 이런 식당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벌서면서 밥 먹는 느낌이다.


건물이 좀 낡았어도 주인이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펜션은 다시 가고 싶다. 모처럼의 여행 기분을 망치지 않고 유지 혹은 더 좋게 해 준 주인이 고맙기 때문이다. 또 그럴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적 자아는 사소하고 섬세하며 예민하다. 이성적 자아의 만족만 가지고는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없다. 감정적 자아는 날 것 그대로의 만족을 원한다. 이런 감정적 자아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판단으로 불륜 같은 탈선에 빠지기도 한다. '내 감정에 솔직해야지. 한번뿐인 인생인데...' 하면서 말이다.


내가 서툴지만 계속 악기를 배우고 더 늙기 전에 춤도 배우려고 하는 건 감정적 자아의 만족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감정적 자아를 충족시켜 주는 건 음악과 춤과 영화와 잔잔한 물가에서의 붕어낚시... 이런 것들이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감정적 자아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면, 수인한도를 넘어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적 자아는 이성적 자아를 깡그리 무시한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이판사판 공사판, 니 죽고 내 죽자' 이런 식이 돼버린다. 이런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어느 순간 이렇게 됐다면 차분히 내 감정적 자아를 잘 달래야 한다.


이성적 자아에 너무 치우치면 삶이 건조하고 삭막해진다. 언제나 미래만 있는 삶이다. 하루 동안 당신의 해맑은 웃음 한 번을 찾아보기 힘든 삶이다.


감정적 자아에 치우치면 삶이 부패하기 쉽다. '나의 만족', '한번뿐인 인생'이란 논리에 빠져서 타인의 피해는 아랑곳 않고 충분한 숙고 없이 충동과 유혹에 빠진다.


삶은 완전한 자동모드도 수동모드도 아니다. '될 대로 되겠지'하며 산다고 해서 운이 절대로 내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하려 해도 절대로 삶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동과 자동모드 사이에서 조율하려는 의지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작고하신 고 황수관 박사의 유행어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처럼 자주 자신에게 '오늘 하루 만족하셨습니까'하고 물어보자. 출근체크카드처럼 의무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이성적 자아와 감정적 자아가 하루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보냈는지 자주 자신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열심히 살면서도 열심히 살지 않고, 잡으면서도 내버려 두는, 그런 달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시늉이라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