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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 마음의 공간

by 밤새

요즘 <EBS 건축탐구 집>을 즐겨본다. '언젠가 귀촌을 하게 되면 내 집을 어떻게 짓고 꾸밀까' 미리미리 공부와 연구를 해놔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 몸뚱이 하나 삐대고 누일 공간을 가지려고 우리는 이렇게 집에 집착한다. 얼마 전 <공간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다 말았는데 집이나 사람, 삶 전체 속에서 공간을 생각해 보게 됐다.


산책이나 등산을 할 때 내 뒤나 앞에 사람이 바짝 붙어 오면 먼저 보내주든지 빨리 달아나든지 해서 내 공간을 확보한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평상시 썸을 타거나 맘에 둔 이성과 우연히 물리적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설렌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으로도 뭔가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대형트럭이나 탑차가 앞에 가면 시야가 가려서 운전하기가 답답하다. 빽빽한 아파트 숲이 답답한 것도 그 풍경이 마음의 공간(여유)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자기 말만 쏟아내는 사람과 마주하기가 답답하고 피곤한 것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 말이다.


최근에 개가수(개그맨 가수)를 타깃으로 만든 노래를 생각해 본다. 신나야 하고 비트가 빨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결국 노래(편곡)가 지저분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색한 연기 같은 느낌이다. 진정한 신남이란 리듬의 여백 속 자연스러운 그루브로 듣는 이 스스로 흥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시골살이의 시작은 우선 저렴하고 넓은 터를 구하는 것부터. 그래야 공간에 대한 실험과 장난을 많이 쳐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튜브와 책으로 독학해서 집을 짓는 분들이 프로그램에 꽤 나오는 걸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곡이나 요리나 건축이나 결국 '만든다'는 측면에서 같은 원리와 이치 안에 있으니까.


요리도 공간이다. 재료가 부족하면 밍밍한 맛이 나지만 과하면 부담스러운 맛이 난다. 적당한 재료와 적당한 여백이 좋은 비율로 섞일 때 멋진 요리가 탄생한다.


1+1 할인이나 배송비 때문에 많이 사들인 먹거리들, 물건들도 냉장고와 거실과 방의 공간을 잡아먹는다. 집안의 여유공간이 사라질수록 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진다. 비좁다는 건 짜증을 유발한다.


내 마음의 공간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꾸 벽을 쳐서 공간을 좁게 하고, 시야를 어둡게 하고, 빛을 가리지 않는지 확인해 보자. 질병과 장애, 환경의 애로에 대해서는 좀 느긋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에 대해서 울그락붉그락 화딱지를 내봐야 내 맘의 공간만 쪼그라들 뿐이다.


목표에 대해서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목표가 물론 중요하지만 목표를 위한 목표, 목표뿐인 인생이 되지 않도록 현재 나와 가족의 행복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국립공원은 입장료를 받지만 그래도 아직 자연은 우리에게 공짜로 공간을 내어준다. 탁 트인 풍경을 선사하고, 답답한 차 소음이 아닌 공간이 있는 새소리, 벌레소리를 들려준다. 천장이 높고 인체친화적으로 지은 도서관 등 잘 지은 건축물도 우리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삶의 공간, 마음의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배치하고 꾸려나갈지가 자존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위해 내어 주는 버스의 한 좌석이 아름답듯이 스스로에게 공간을 허락하는 삶, 누군가를 위해 내 자리를, 마음을 내어주는 삶. 그런 공간이 있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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