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쉽게 수용해서야...
경계(境界):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경계(警戒): 뜻밖의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여 단속함.
내가 말하려는 경계는 후자이지만 전자인 경계(境界)와도 뜻이 일맥상통한다.
흉악범과 패륜범이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세상이다. 부모를 잘못 만나 학대와 죽임을 당하고, 자식이나 이성을 잘못 만나 살인을 당하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
공포나 스릴러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가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다. 마음을 놓고 있는 순간, 은밀하게 등 뒤로 와서 마음과 육체에 폭력을 가하고,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 말고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무수한 배신을 당한다. 직장에서 순진하게 마음을 다 까발려 놓았다가는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묘한 시기와 질투, 욕망과 배신과 뒷담화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속세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인간관계 말고도 우리는 수많은 순간, 수많은 사례에서 배신을 당한다. 환상적인 블로그 사진빨에 찾아간 맛집이 더럽고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상품평을 꼼꼼히 보고 주문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유별난 건 아닌데 말이다.
스트레스 풀려고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신나게 놀아보려 간 클럽의 지나치게 큰 음악 소리가 나의 청각과 심신에 나쁜 자극을 주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여서 집에 돌아온다. 그럴듯한 포스터에 기대감을 갖고 본 영화가 내 귀중한 두 시간을 갉아먹었다.
휴대폰 속, TV, 엘리베이터 안, 버스나 택시 광고... 내 눈앞에 디스플레이되는 화면은 끝이 없다. 구분되거나 정제되거나 절제되지 않은 끝없는 유혹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는 나의 귀중한 시간을 야금야금 집어삼키는 몬스터들이다.
'경계'라는 단어는 그다지 재밌고 신나는 단어는 아니다. 열정, 기쁨, 환희... 이런 단어들과 어쩌면 동떨어진 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경계'는 필수다.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도, 보다 행복한 생존을 위해서도 경계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서 건강이 망가지고 나서는 음식을 가릴 수밖에 없다. 온갖 술과 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어서는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다. 약이 되는 음식, 내 몸에 맞는 음식은 수용하고, 내 몸에 자꾸 부작용을 일으키는 음식은 달거나 고소하거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더라도 경계하고 배척해야 한다.
하루 동안의 내 시간을 허락(허용)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경계(境界)가 있어야 한다. 기준조차 없다면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지, 어떤 일을 한 후에는 낭패감과 자괴감을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수용할지를 제대로 알고, 점점 더 실천이 늘어갈수록 성숙한 인생이 되는 듯하다. 경계가 지나치면 삶이 경직될 수도 있다. 건강염려증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계 없는 삶이 대범한 삶은 아니다. 그건 그냥 어리석고 우둔한 삶이다.
심리적으로 가장 큰 배신은 믿었던 나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믿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 말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다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몇 권 안 읽었지만 주식에 관한 책에서 저자들이 하는 공통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대박의 꿈보다는 멘탈 관리, 경계심이 먼저라는 것이다. 새 집으로 이사 가면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멋진 인테리어보다는 차츰 짐들이 쌓여서 집이 더럽고 정신없어지는 걸 우선 경계해야 한다.
꿈을 좇는 사람은 열정도 좋지만 포기를 경계해야 한다. 열정은 식었다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지만 포기는 일말의 가능성을 휴지통에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귀한 나. 심신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수용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고, 실천해 보자. 쉽지는 않다. 울타리를 쌓는 일에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안에 평화와 안위가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허락 없이 내 앞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이다.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