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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05. 2021

어설픈 나, 과분한 멘토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

내년이면 나도 50이다. 만으로는 아직 49. 생일이 빨라서 다행이다. 작곡이랍시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희망 고문이 여러 번 있었지만 곡이 팔리는 서프라이즈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작곡 멘토 작곡가 D는 물론 내가 설레발쳐서 처음 알게 됐다. D는 유기견을 돌보는 매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분이기에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나를 흔쾌히 만나 주셨다.


이번에 온라인 작곡 강좌를 진행한 또 다른 작곡가 S가 일정 인원에 한해서 곡 피드백을 해 주신다기에 60% 정도 만든 곡을 급하게 완성하여 서울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에 간 김에 멘토 D도 만나고 왔다.


이번이 오프라인으로는 세 번째 만남이다. 바쁜 줄 뻔히 아는데 만나 달라고 하는 것도 실은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입봉하지 못한 작곡가에게는 프로에게 듣는 한마디가 금같이 소중하기 때문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는 것이다.


드디어 어제 D를 만났다. 첫 만남에서는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주셨는데, 어제는 정말 촌철살인의 조언들을 쏟아 놓으셨다. 핵심은 아직 스킬이 많이 부족하니 편곡시 괜히 어설프게 멋을 내지 말고, 최대한 담백하게 감성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곡을 만들라는 말씀이었다. 적어도 팔려고 만드는 곡에서는 말이다. 그래야 그나마 팔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글도 그렇지만 곡도 아직 기초가 안돼 있거나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성곡 흉내를 내려고 이것저것 악기를 추가하고 마구잡이로 넣다 보면 오히려 아니한만 못한 곡이 된다고 하신다.


그래. 뭐든지 본질이지. 내가 이 곡을 처음에 어떤 감정으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하지. 멋을 내려고, 화려한 악기 솔로를 들려주려고 만든 건 아니잖아. 내가 이 곡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데? 정말 이 본질에, 기본에 오롯이 집중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간 곡을 팔려는 조급한 마음만 앞섰지. 내 감성의 에센스, 정수를 어떻게 잘 끄집어내고 표현할 것인가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도 어떻게 가상악기 샘플로 그럴듯하게 분위기를 꾸며낼까를 고민했지, 소박하지만 리얼로 찐감성을 연주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조언이 소중한 건 수십년지기 친구도 해줄 수 없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모르니 그저 곡이 괜찮네, 별로네 정도로 본인들의 취향에 따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책을 함께 썼던 나의 찐친구들도 이번 상경에 만났다. 우리가 안 지 2년이 넘었고 나는 아직 곡을 못 팔고 있지만, 이 친구들은 여전히 과할 만큼 나를 응원해 주신다. 내년 11월 모임은 <밤새 곡 판매 기념파티>라고 일정표까지 만들어서 단톡방에 올린다. 하하. 내년 이맘때까지 못 팔면 부끄러워 어쩌지. 곡을 못 팔더라도 그때까지 곡의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어 있다면 부끄럽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곡의 수준도 그저 그렇고, 완성한 곡도 몇 곡 안된다면 당연히 부끄러우리라. 


나의 멘토 D는 점심까지 사주셨다. 촌철살인 조언에 밥까지!!! 책친구들도 더치페이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밥을 사주셨다. 정말 몸도 마음도 배부른 상경이었다.


멘토 D와 나의 책친구들. 이런 인연은 정말 놓치기 싫은 인연이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데, 사람인 나도 당연히 보답을 하고 싶다. 좋은 노래, 위로가 되는 노래, 감동적인 노래를 만들어서 말이다.


작곡가 S에게 곡 피드백을 받은 후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10년 동안 음악을 했는데, 곡을 한 곡도 못 팔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늘 있습니다." S가 말했다. "10년 동안 음악을 해도 곡을 못 파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중에 운 좋은 몇몇이 곡을 파는 거고요."


그래, 10년 동안 곡을 못 판다 하더라도, 적어도 못 팔 걸 미리 두려워해 곡 만드는 걸 포기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포기는 정말 내게 과분한 호의를 베풀어준 D와 책친구들을 실망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더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미래가 보장되는 다른 일도 없다. 그러니 나는 계속 음악을 할 것이다. 부족한 드럼 기초를 배우고, 피아노로 곡을 카피해 보고, 최대한 담백하게 곡을 쓰는 연습을 계속해봐야겠다. 


꿈을 좇지 않아도, 평범하게 살아도 스트레스는 여전히 받는다. 이왕 스트레스 받는 거 하고 싶은 거 하며 스트레스 받는 게 낫다. 그리고 내가 꿈을 좇지 않았다면 이 좋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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