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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24. 2021

좋았다가 싫어지면

변심은 한순간

인간관계에 있어서 전한 성인(聖人)이 있을까? 나이 50이 되면 웬만한 인간관계는 도가 통할 정도는 아니라도 무난하고 원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나와 아내와 친구의 사례에서 보면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있어서 오히려 더 옹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기준과 취향이 명확해지고 자아가 강해지므로 웬만한 일에는 자존심을 굽히지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건 아니지' 하며 마음이 닫힌다. 잘 지내다가도 특정 상황이나 행동을 통해 그런 면을 발견하면 실망하거나 경계하게 된다.


물론 어떤 상대방에게는 내가 '이건 아니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살얼음 걷듯 조심하며 산다고 해도 말이다.


매우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배려와 관용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해도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내 영역을 침범할 때는 스스로 세운 좋은 인간상은 여지없이 흔들리거나 깨진다.


그렇다고 기준도 없이 제멋대로 인간관계를 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란 삶 자체이고 날마다 일어나는 리얼 현실이 스트레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고민 때문에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어릴 때부터 알고 모임도 하고 있는 나름 친한 친구들이다.


그중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큰 조직에서의 인간관계 생존 요령에 대해 물었고 대화가 열댓 번 오갔다. 그러던 중에 그중에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둘 다 길게 말하지 말고... 정신 사납다.  따로 톡 하든지"라고 말한다.


"미안. 알았다" 란 글을 남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씩 괘씸해진다.


여기가 무슨 공식적인 업무 단톡방도 아니고, 길게 말하지 말라니... 명령조로? 단톡방 알람은 꺼두는 게 보통인데... 정 알람이 시끄러우면 갠톡으로 좋게 부탁해도 될 것을.


"정신 사납다"니? 나는 너의 정신 사나운 고민과 하소연을 얼마나 많이 들어줬는데. 뻔한 레퍼토리, 똑같은 얘기, 답 없는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렇게 나는 삐치게 되었다. 예상대로 다음날 전화와 카톡이 계속 왔다. 우리는 거의 매일 연락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계획대로 그것들을 씹었다. 퇴근 후에 전화벨이 또 울린다. 이런 일로 밀당하기도 싫고 해서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나? 전화를 안 받노?" "아니, 어제 일로 삐쳐서 전화 안 받았어. 니가 쓴 글 다시 한번 읽어봐." "아, 그랬나? 별일 없으면 됐다. 계속 삐쳐 있어라."


자식, 괜히 멋있는 척하려고. 나는 옹졸해서 삐쳐있고, 지는 친구의 무사함을 확인했으니 친구가 삐쳐있든 말든 전화를 끊는다는 건가.


더 황당하고 짜증이 난다. 지도 실상 엄청 옹졸하면서. 고졸 생산직 친구가 야간대 졸업한 후 명문대라고 자랑하는 걸 꼴사나워하고 - 직장 다니면서 야간으로 공부해 졸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자랑하면 좀 받아주면 되지- 술자리에서 지 이야기만 한다고 또 뒷담화를 한다. 그럼 그냥 '니 말 좀 그만해라. 나도 좀 하자' 해도 되지 않을까. 친구끼리 말이다.


이렇게 당분간 냉전이 될 것 같다. 그 친구도 나름 나를 엄청 챙겨줬으므로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먼저 연락을 하고 싶지 않다. 먼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잘 지내던 전 직장상사와도 급작스러운 나의 이직 때문에 하루아침에 관계가 깨지고 말았다. 가 잘못했어도 상대방 응이 예상보다 지나치면 당황하게 된다. 특히나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겉으론 친절하고 매너가 좋은 것 같은데 유독 돈 문제에서만 약삭빠른 사람들도 있다. 자기 돈은 십 원짜리 하나 쓰기 싫어하는 사람. 한두 번의 차량 동승에 감가상각까지 따져서 1/N을 요구하는 사람.


아내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일면 귀여운 동생인데 일은 너무 게으르고, 그 부분을 아내가 계속 뒷감당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너무 착하거나 착한 척해도 문제인 것이다.


그저 다 이해하고 내가 양보하고 배려하라고? 그것도 한두 번이지. 부처가 아닌 이상.


'그저 산에 들어가는 게 답인가" 하는 허망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태생이 까탈스럽고 예민한 면도 있을 것이다.


외롭지만 누구에게도 선뜻 미주알고주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참 어려운 중년 생활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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