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어서 기분이 좋다
하루종일 인상쓰고 있어봐야 나만 손해
병들지 않았다면 환자의 고통을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기분이 좋다
미천한 직업을 가져봐서 기분이 좋다
하찮게 보는 눈초리, 멸시하는 말들, 추위와 더위
겪어보지 않았다면 삶의 현장을 살아내는
대단한 그들의 애환을 어찌 공감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지 못해 기분이 좋다
꿈도 없는 사람도 많을 걸 보니 그래도 꿈이 있고
날마다 노력하고 있는 내가 기특한 걸
나이가 많아서 늙어가서 기분이 좋다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인생은 철없는 인생
죽음에 가까워져서, 삶에 숙연해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권력이 없어서 기분이 좋다
권력에 취해서 권력이 나인 양 비틀대지 않고
권력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내가 좋다
음악을 못해서, 천재가 아니라서 기분이 좋다
배우고 모방할 것들이 차고 넘치니
심심할 틈이 없어서 기분이 좋다
아니 지금 술이 한잔 들어가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일 술이 깨면 다시 기분이 나쁠까
하하 어쨌든 살아있어서
삶의 장난을 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여보시게 우리 둘 혹은 셋이서
시끌벅적 마음으로 삶을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