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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것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by 밤새

드디어 최초로 대중가요 반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연주해 봤다. 실수 없이 치기가 쉽지 않으므로 보통 1절을 실수 없이 녹음하면 2절은 복붙할 때가 많았다. 초심자용 소품곡은 완곡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대중가요 반주는 배운 지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원테이크 녹음은 처음이 되겠다. 내게는 꽤 의미 있는 사건이요. 이정표다.


진도상 다음 곡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인데, 모든 곡이 그렇듯 악보로만 볼 때는 부담감에 손대기가 싫었다. 이제 겨우 <바람이 분다>를 완곡해서 사실 좀 쉬고 싶었지만, 쉬면 눕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 특히 악기는 하루 이틀 손을 대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슬금슬금 멀리 하게 되는 걸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경계하며 반 억지로 <사랑하기 때문에> 앞부분을 쳐본다. 그런데 웬 걸 비교적 수월하게 쳐진다. 어? 내 실력이 좀 는 건가? 곡이 쉬워서 그렇나? ㅎㅎ


이번에는 반주 악보가 따로 없고, 멜로디와 코드만 있는 악보다. 이 반주도 완성을 하게 되면 내게는 최초가 된다. 멜로디와 코드만 보고 반주한 최초의 노래. 모든 반주자가 그렇고, 작곡을 하려는 나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이렇게 하려고 연습을 하는 거다. 멜로디와 코드만으로 그 노래에 어울리는 보이싱과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


원테이크든, 악보 없이 치든 프로의 세계에서는 뭐가 대수겠는가? 그저 시시콜콜한 진도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러나 50 평생 포기 안 한 것보다 포기한 게 더 많았던 내 삶에서 아직 이 음악만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나는 기록의 힘이라고 믿는다.


기록은 과정을 형상화시켜주고, 음악 여정에 이정표를 세워 준다. 기록 자체가 애쓴 자신에 대한 위로요, 격려다. 쉰 살에 음악 하는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누가 날마다 귀 기울여 주겠는가? 가까이 있는 아내나 친구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나 역시나 누군가에게 시간을 할애해서 날마다 관심을 가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나 내 관심사 밖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기록은 중요하다.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주고, 삶에 질서를 부여한다. '그까짓 쩨쩨한 피아노 진도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유희열이나 정재형보다 못 치잖아' 이런 목소리에 지면 안된다. 그런 목소리에 져서 지금껏 수없는 포기를 해왔으니까.


기록은 또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계속해주고, 채찍질도 해준다. 삶의 대화는 80%가 자신과의 대화이고, 20% 정도가 타자와의 대화가 아닐까? 내가 하려고 하는 어떤 것. 원하는 그것과, 그 진행 상황에 대해 날마다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는다.




모두가 손뼉 치지만 내가 빠진 공허한 길보다는 거의 모두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진정한 내 자아가 있는 그 길을 나는 간다. 갈 것이다. 시시콜콜한 기록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8KOO8JOiE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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