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새 Jan 30. 2022

선택권과 함께 늘어나는 탐욕

좁은 선택권이 주는 행복

나는 위장이 안 좋다. 소화를 잘 못 시키고, 가스가 잘 차서 가리는 음식이 많다. 육류, 튀김류, 양파, 오이, 밀가루 음식, 흰쌀밥 등등. 이 모든 음식들을 끊고 살지는 못하지만, 섭취에 대해서는 늘 부담을 갖고 있다.


전천후 위장을 가지고 마음껏 먹어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좁은 선택권이 좋은 점도 있다. 안 좋은 위장이 유해 식품에 대한 바로미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술이 안 받아서 못 마시는 사람처럼 나도 유해 식품을 많이 먹을 수 없다. 몸이 바로 불편한 반응을 해오기 때문이다.


무슨 음식이든 척척 소화시키고 , 다양하고 수많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먹는 데에 그만큼 시간을 많이 소비할 것이다. 선택권이 많 때문이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봐야 하니까. 인생의 시간은 유한하다. 음식을 요리하고, 선택하고, 먹으러 다니고, 먹는 시간을 나는 다른 더 큰 관심사에 할애할 수 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장점이다. 많은 선택권과 함께 자동으로 따라오는 탐욕을 큰 자제심 없이도 차단할 수 있는 점.


통장이 텅장이 돼가는 시점보다 주머니가 두둑한 시점에 마트에 가면 정말 살 게 천지에 널렸다. 세일하는 제품은 기본이고, 제철 과일은 제철이라서, 1+1은 하나 더 주니까... 계획에 없던 물건들은 사고 싶은 물건들이 되고,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야 하는 물건들로 합리화되어 있다. 돈이 많아지니, 선택권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자동으로 탐욕이 늘어난 것이다.


복권 당첨 이후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역시나 많은 돈으로 인한 다양한 선택권을 감당하고, 제어하고, 자제할 멘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 -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직 아님 - 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 따로 밥벌이를 하지 않고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늘 꿈꾼다. 하지만 많은 돈으로 시간의 자유를 얻게 되면 과연 음악을 열심히 할까? 음악만 할까?


돈이 많아지면 세상에 재밌는 다른 많은 일들로 눈이 돌아갈지 모른다. 해외여행부터 시작해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재밌는 일이 있지 않은가? 온갖 먹거리, 볼거리, 할 거리들이 세계 도처에 널렸다. 물론 게 중에는 도박, 섹스,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고, 타락으로 인도하는 일들도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돈이 많아지면 음악을 열심히 할지는 사실 물음표다. 음악인들의 우스갯소리 중에 악기를 잘 다루려면 골방에 틀어박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매일매일 악기와 씨름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빨리 느는 건 인지상정이다.


부자가 되는 법에 관한 수많은 책들과 영상들은 부자가 된 이후에 지속되는 삶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보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컨대 부자의 삶도 그다지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자의 많은 선택권. 선택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잡아먹고, 늘 그 인근에 탐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은유가 어떤 책에서 말하길 자신의 세계가 좁다고 해서 글쓰기를 망설이지 말라고 한다. 그 좁은 세계가 자신만이 들어와 있는 세계고, 그 세계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일 잘 말할 수 있다는 거다.


이렇듯 좁은 선택권은 동전의 양면이다. 신체의 한쪽 기관이 마비되면 다른 기관이 발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현재 나의 좁은 선택권을 원망하지 말자. 좁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열 명이성이 동시에 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중에 세 명은 나도 무척 마음에 들고, 그중에 또 세 명은 정말 진심을 다해 나에게 헌신한다면? 더블데이트를 해야 할까? 이것이 과연 행복한 상황일까? 적어도 감정 소모라는 측면만 봐도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소화력이 약한 나는 복국 같은 맑은 국물을 먹으면 비교적 속이 편안하다. 적당한 나물과 야채, 잡곡밥을 소식하면 역시 변도 잘 보고 속이 편안하다. 소박한 행복이다.


소비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선택권은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에 오징어게임이 1위를 했다 하면 보고 싶다. 봐야 한다.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이고, 임영웅이 부른 ost도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들어봐야 한다. 그걸 보고 들으면서 그 옆에 다른 것도 또 보고 듣게 된다. 시간과 의식과 감정을 잡아먹는다.


집에 TV도 없고, 넷플릭스도, 음원사이트도 가입하지 않았다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아니라 유튜브도 마음껏 볼 수 없다면, 그런 것들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것을 보고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산책이나 명상이나 가족과의 수다나 몸치의 춤 연습 같은 것들 말이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일이 바빠서, 건강이 안 좋아서, 친구가 없어서...라는 좁은 선택권 때문에 스스로 루저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아니 많다. 여러분 중에도 있을 것이다. 좁은 선택권을 사랑해 보자. 대형마트가 없던, 동네 마트와 재래시장에서 정이 오가던 시절이 때로 그립지 않은가. 내 또래라면 공감하실 것이다.


김치만 가지고도 김치콩나물국, 김치전, 돼지김치두루치기, 김치볶음밥 등을 만들 수 있다. 계속 반복해서 만들다 보면 점점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차가 있거나 차비가 있으면 버스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을 생각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그럴 기회, 그럴 수밖에 없는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걷게 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넓고 많은 선택권 옆에도 항상 탐욕이 도사리고 있고, 좁은 선택권 옆에도 늘 행복이 숨어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상기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콜콜한 것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