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다행이다]로 라인 클리셰 연습 중이다. 라인 클리셰란 같은 코드가 반복될 때 코드의 구성음이 순차적으로 움직이도록 코드를 바꾸어 반주하는 거라고 한다. 쉽게 말해 코드 구성음이 반음 상행, 또는 하행하도록 연주하는 것.
화성학에서 반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실력파 작곡가가 말씀하셨다)는데, 연주를 해보면 과연 그러함을 더욱 느낄 수 있다. 베이스가 반음씩 떨어지거나 피아노 왼손 루트음이나 오른손 코드 구성음이 반음씩 상행, 또는 하행하게 되면 그 사운드가 오묘한 매력을 띄게 된다.
음악은 요리 같아서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들어 볼수록맛을 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미 그 비법이 많이 공개돼 있기도 해서 응용을 잘하면 된다.
음악은 언제나 감동 + 재미가 부담감과 대척점에 있었다. 듣기에 너무 아름다워서 직접 연주해 보려면 앞이 막막해져서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최근 피아노 반주 실력이 조금 늘고, 코드 반주에 재미가 붙으면서 매일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음악이 부담스럽지 않은 경지에 도달한 것인가? ㅎㅎ 그건 아니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 내가 음악을 무서워했던 감정에 비해서 상당히 친해진 건 맞다.
음악의 삼위일체 - 내가 지어낸 말 - 란 듣는 맛, 연주하는 맛(노래 포함), 만드는 맛을 말한다. 이 세 가지는 각기 다른 맛(매력)을 지니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엉겨 붙어 있다.
이것들은 다른 행위 - 친구랑 수다 떨기, 독서, 글쓰기, 등산 등등 - 가 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느끼기에 음악의 가장 큰 메리트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는 점이다. 사람의 언어로 줄 수 없는 위로, 마음속 깊은 곳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어느 정도 달래준다.
음악도 역시 삶이나 신 위에 있지는 않지만, 어째서 인간이 이토록 소리의 조합에 감동하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이적, 김동률 이런 가수들 음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이들이 명문대 출신이라 나 스스로 열등감도 있었고, 그들의 노래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교재에 나오니 안쳐볼 수가 있나? <지은쌤의 30일 피아노 코드 반주>가 좋은 점은 그동안 동경만 하고 부담스러워했던 곡이 연습곡으로 계속 나온다는 점이다. 유재하, 이소라, 이적...
솔직히 이적의 <다행이다>는 그리 좋아하는 곡이 아니라서 패스하려다가 진도상 연습을 해야 하는 곡이라 어쩔 수 없이 했다.
어! 그런데 막상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불러보니 화음이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아니지만 아름답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적이 아마도 피아노를 치면서 이 곡을 만들지 않았나 싶게 피아노와 잘 어울린다.
어쨌든 이렇게 앞부분 조금을 완성했다. 이런 사소한 완곡을 SNS에 계속 올리는 건 사실 무척 귀찮고 손이 많이 간다. 촬영, 녹음, 편집이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연습이 됐으니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이 곡과 연주의 매력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영상을 찍고 녹음을 했다.
완곡을 계속 SNS에 올리는 것의 장점은 혼자서만 완성하고 넘어갈 때보다 완성감과 성취감을 더 준다는 것이다. 영상이나 음원을 업로드한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수많은 팬이 있거나 구독자가 확 느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의 팬들이 응원을 해주기 때문에 이것도 다음 진도를 나가는데 큰 힘이 된다.
또 한 가지. 나이 들어서 나 자신에게 추억거리가 될 거라서 꾸준한 기록이 의미를 가진다.
"다행이다" 이 부분에서 음이 5도가 떨어지는데, 노래 부르기가 꽤 까다로웠다. 가사가 "다행이다"라서 음이 떨어지나? 안심하는 거니까. 이 정도면 다행(안심)이 아니라 낙심인데? 혼자 생각해봤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