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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23. 2022

여보, You Win!!!

집 청소와 정리에 소질이 없는 아내 때문에 젊은 시절 나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무릎이 아파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요즘, 아내가 집을 치우기 시했다.


우리 집이 어질러져 있는 책임은 우리 부부 반반이다. 아내는 정리정돈을 못하고, 나는 하나에 빠지면 온갖 것을 사들이는 비정상적 습관이 심하다. 낚시에 빠졌을 때, 푸드트럭으로 장사를 할 때, 공무원 공부를 할 때 사들인 온갖 물건들이 집안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내 책임이 많이 있는데도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이 많았다. 살림 잘하고 집 잘 정리하는 이상적 아내상을 꿈꾸면서. 싸우면 늘 나는 아내의 정리정돈 능력을 공격하고, 아내는 나의 경제적 무능을 공격한다.


나이가 들고 내가 문제가 많은 허점투성이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아내를 향하는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대신 현실적 타협점을 찾아보려 했다. 하루에 한 시간 이내로, 범위를 정해서 청소를 해보면 어떻겠냐 제안을 했다. 아내도 수긍을 했다.  체력이 약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아내에게 좋은 방안이었다. 그렇게 소파 위를 시작으로 정리가 조금씩 진행 중이다. 나도 옷을 마구 걸쳐두던 의자를 정리함으로써 스타트를 끊었다.


아내는 그야말로 온실 속에 화초처럼 성장했고 어린 나이, 첫 연애에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 초기 아내를 깔보는 마음이 은연중에 많았던 것 같다. 나는 10대 때 공장에도 다녀보는 등 나름 난한 삶을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보면 아내의 승, You Win이다. 큰애의 두 번째 공무원 수험기간 동안 경제적 지원도 아내가 했고, 얼마 전 둘째의 중고차도 아내가 돈을 댔다. 내 공이라면 큰애에게는 일절 잔소리를 하지(갈등상황을 만들지) 않아 큰애가 합격할 수 있었고, 둘째에게는 차를 골라줬을 뿐이다.


내가 경제개념이 없는 건 진즉에 알고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버는 족족 카드값으로 다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모아서 아들들 뒷바라지를 하는 아내가 더 대단하게 여겨진다.


어릴 때 헤어져 살가움이 없는 엄마한테도 나 대신 딸처럼 싹싹하게 잘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엄마도 나보다 며느리에게 먼저 연락한다.


나는 졌지만(내가 잘났다는 면에서) 아내를 보면 복 받 남자 같다. 뭔가 더 당당한 남자로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긴 하다. 반면 사고만 치지 말고 조용히 살아야 하나 생각도 든다. 은근히 사고를 잘 치며 살아온 과거가 있기에.


둘째는 고등학교 때 워낙 사고를 쳐 학교에도 많이 불려 가고, 겨우 졸업을 시켰지만 지금은 영업 1등이다. 나도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적으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어떻게 다 해내는지 신통방통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가까운 사람의 능력도, 내 능력도 함부로 속단하고 깔보면 안 된다. 아내의 끈기, 생활력,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 정리정돈 능력을 철없던 젊은 시절의 나는 몰랐다. 그 능력들은 잠재돼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대화와 관심, 이해와 배려를 통해야만 드러나는 것들이었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중, 노년의 우리 부부는 좀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남이 만든 6개의 트랙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이고 있는(작곡 레슨 숙제) 나에게도 잠재 능력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재밌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빠르게 잘 드러나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켜보면 언젠가 승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의 잠재력을 믿음으로써 아내는 나에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나의 잠재력을 믿음으로써 나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오늘 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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