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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n 02. 2022

성과 없는 긴 터널을 지나며

그래도 음악

작곡 레슨 숙제로 받은 6곡 중 4곡에 멜로디와 가사 붙이는 작업을 완료했다. 2곡은 나름 수월했고, 2곡은 제법 어려웠다. 제일 힘들 것 같은 2곡이 남아있다. 매일 퇴근하고 해당 MR을 틀어놓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내가 측은하기도 하다. 름 잘 나온 것 같은 2곡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지만 유출 금지라 그럴 수도 없다.


작년 9월에 마지막 앨범을 발매했으니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산허리의 고목아' 이후로 대로 된 곡으로 기획사에 대시 못  지도 2년이 넘은 것 같다. 곡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작곡 공부와 피아노 연습, 먹고살기 위한 8시간 직장생활, 50에 진입한 나이 등 현실은 정말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데도 없다. 대한민국 가장은 묵묵히 돈 잘 벌어오고 집안일 많이 하면 인정받지만 나 같은 경우는 어디 가도 좋은 소리 듣기가 힘들다. 음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여기저기 내가 음악 한다고 떠벌리고 다녔지만 지금은 나를 이해해 줄 만한 사람 외에는 속사정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하면 99%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음악은 취미로 하고, 열심히 돈 벌어야지. 나이도 있고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지!"


발매한 곡 중 일부는 지금 들어보면 좀 부끄럽다. 음원사이트에서 트롯 장르만 선택해서 들어보면 유독 함량 미달의 곡들이 많다. 내 곡도 그런 곡들 중 하나가 되기 싫어서 트롯이든 발라드든 다음 곡은 좀 신중을 기하고 정성을 들이고 싶다. 인기가 있든 없든 한번 발매한 곡은 음원사이트에 거의 영구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은 어릴 때부터 기획사에서 집중적으로 작곡 교육을 받아서 결국에는 하루에 한 곡도 수월하게 썼다고 한다.(아내가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이야기)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사치고,  2주에 한 곡이라도 깔끔하고 꾸준히 썼으면 좋겠다.


음악을 취미로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취미로 하면 못해도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타협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이상의 수준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다. 대강 끼니를 때우면 배는 채워지지만 요리 그 이상의 요리, 환상적인 미각을 맛볼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프로의 길이 멀고 험한 것도 사실이다.


다른 이의 삶을 봐도 다들 좋아 죽을 것 같은 일들이 날마다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음악은 고통도 주지만 희열도 주니까. 사랑하는 존재는 대부분 희열과 함께 고통을 주지 않나.


내가 음악에 집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업이 내 자존감 회복이라 믿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 비록 나중에 파도에 휩쓸려 가더라도 모래성을 완성하는 편이 훨씬 뿌듯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어차피 사라질 거 아무것도 안 하고 편히 쉬겠다는 마인드는 너무 늙은 마인드.




파도가 와서 휩쓸고 지나가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에라도 누군가가 그 모래성을 보고 "하하, 깔깔" 대거나 감동받을 수 있다면, 그게 아니라도 모래성을 만드는 동안 외로움과 공허함을 잊고 남모를 환희와 감격을 느낄 수 있다면 모래성을 쌓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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