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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l 10. 2022

창현의 거리노래방 예선 탈락기

거제 파도가요제 예선

진주가요제 예선에 참가하면서 연락처를 주최 측(MBC 경남)에 제공했는데, 역시 MBC 경남에서 주최하는 행사라 그런지 거제파도가요제 예선이 있다는 문자가 왔다. 가요제 참여의 주목적은 내 노래를 알리는 것이다. 나는 찐무명 작곡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밤새'라는 내 음악 닉네임과 내가 작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진주가요제는 한창 코시국에 열렸기 때문에 예선을 온라인 동영상 제출로 치렀다. 생소한 창작곡을 영상 속에서 무반주로 부르는데 합격할 가능성은 당연히 낮지. 노래 실력도 별로였다. 예선 탈락.


얼마 후에 거창에 또 무슨 가요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앨범을 낸 사람은 안된단다. "앨범 냈다고 다 프로도 아닌데. 이거야 원~" 그런데 이번 파도가요제 예선은 그런 제한 없고, 반주도 틀어주고, 오프라인으로 본단다. 창작곡도 가능하고, MR을 준비해 가면 된다네. '오! 내 노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만의 하나 운이 좋아 본선까지 진출하면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노래를 평가받을 수 있겠지.' 그래서 참여하게 됐다.


노래 연습도 많이 안 했고, 본선도 아닌 예선인데 혼자 조용히 다녀올까 하다가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주위에 알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긴장해서 노래 부를 텐데, 응원군이 아무도 없으면 더 주눅이 들 것 같았다. 창현의 거리노래방 채널에서 예선을 실시간 중계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지인들도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응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우선 OO방송국 기자단 13기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알렸다. 또 설레발을 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예선 당일은 주말이고, 예선 참가자는 100명인 데다가 내가 정확히 몇 시쯤 나올지는 창현 재량이라고 한다. 그러니 과연 몇 분이나 응원해 줄까? 엄마, 형, 이전에 같이 직밴 했던 친구들한테도 알렸다.


아내, 처형과 함께 드디어 거제 실내체육관 도착. 참가번호를 배정받았다. 11번. '오! 번호 좋은데...' 예상외로 창현이 참가번호 순서대로 진행한다. 내 앞쪽만 해도 벌써 노래 잘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하모니카를 준비한 친구도 있다. 그 사이 13기 단톡방에는 폭풍 카톡이 시작됐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에, 그것도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에 이리 응원을 해주시다니. 감사 백배!!! 참, 내가 복도 많지. 강제적으로 영상을 같이 보게 될(주말에 같이 있을) 13기 가족들한테는 좀 많이 미안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가족 때문에 시답잖은 내 노래 순서가 될 때까지 영상을 봐야 한다니...


목이 약간 잠긴 상태였는데, 오히려 허스키하게 나와서 더 좋은 수도 있다 생각했다. 막상 무대에서는 목소리가 더 안 나오고 고음 올라가는 부분에 음이탈도 나와 버렸다. 1절 후에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창현의 시원한 멘트. 광탈이다. ㅎㅎㅎㅎㅎ 그래도 1절은 다 불러 봤다. 내가 만든 노래를. 현장 참가자와 유튜브 라이브 시청자 합치면 1000명이 좀 넘으니까. 만족한다. 본선행과 탈락행을 라이브 시청자가 댓글로 결정하는데 1이면 본선행, 0이면 탈락이다. 노래를 마치고 언뜻 댓글을 살펴보니 내 순서 때 99%가 0이었던 것 같다. 1이 한 명 있는 건 분명히 봤다.ㅎㅎ 그리고, 노래가 막걸리 생각난다는 댓글이 많았다. 내 애절한 트로트가 막걸리 스타일인가 보다.


고마운 친구 박 작가님이 "곡은 좋다. 작곡에 전념하시라"고 창현이 멘트 하는 순간을 녹화해 주셨다. 구체적인 이유까지 들어가며 좋다고 했기 때문에 탈락자를 위로하는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잘 보관해 뒀다가 음악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려 한다.


가요제 예선에 참가해 보니, 이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정말 실력을 갈고닦아야 하겠구나 싶다. 근력 운동과 발성 연습을 해서 몸과 목의 힘도 기르고. 한 마디로 웬만큼 해선 경상도 사투리로 '택도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본선에 상금이 걸려서인지, 다들 가수 지망생인지 만만한 참가자들이 거의 없었다.


작곡가가 노래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노래가 불려지기 위함이니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도 작곡가의 미션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듣기 좋고, 부르기 좋고, 감동과 위로도 주는 노래. 그런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 음악을 공부하고 습작을 하는 거다. 이번 예선 참가는 여러 가지로 좋은 경험이 됐다. 작곡가(songwriter)는 어쨌든 가수(singer)와 매우 가깝고, 가수를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


무엇보다 응원군이 많이 생겨서 기쁘다. 13기 극성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처음에 당연히 반대했던 -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작곡을 취미가 아닌, 작곡가를 목표로 하겠다는데, 누가 반대 안 할까 - 엄마, 형, 처형도 이제는 응원을 한다. 내가 작곡에 약간의 재능과 강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해 주신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진전이다.




작곡 레슨 때 받은 과제 6곡 중 마지막 곡을 거의 다 완성했다. 정말 힘들었다. 평소 팝을 많이 안 들어서인지 팝 스타일인 이 곡의 자연스러운 멜로디가 정말 안 떠올랐다. 곡을 다양하게 많이 들어야겠다고 반성했다. 이 곡 작사작곡에 스스로 점수를 매기자면, 박하게 주면 30점, 후하게 주면 60점이다. 그래도 완성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숙제를 내 준 선생님이 피드백을 줄 것이다. 그걸 듣고 또 고쳐나가면 된다.


세상에 어차피 쉬운 일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도전이 행복한 것 같다. 삶이란 가만히 있는다고, 역경이 없다고 행복한 게 아니니까. 그 일을 통해서 가깝고 먼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창현의거리노래방 #거리노래방 #거제파도가요제 #파도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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