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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l 24. 2022

속박과 자유의 애증 관계

힘든 작곡 과제를 마치고 나니, 피아노에 손을 안 댄 지 두 달이 넘어 버렸다. 악기란 매일 연습하는 게 제일 좋지만, 나는 멀티가 안 돼서 곡을 쓸 땐 짬을 내서 악기를 연습하는 게 힘이 든다. 과제를 내준 선생님은 내가 과제를 제출하든 안 하든 크게 개의치 않을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호의를 베풀어 준 멘토 같은 선생님이라 과제를 안 하고 어영부영 넘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과제가 무척 힘들었지만, 퀄리티를 떠나서 어쨌든 여섯 곡을 모두 완료했다.

두 달 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잘 쳐 질까? 또 한동안 헤매다가 겨우 이전의 감을 찾는 게 아닐까?' 하지만 예상외로, 어렵지 않게 건반에 손가락이 적응이 되더라. 아마 이전에 꾀나 연습을 한 덕분인 듯하다.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인밴드에서 원래 내 포지션은 일렉기타다. 통기타든, 일렉기타든 많이 어설프기 때문에 사실은 기타도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곡을 쓰는 데 피아노 연습이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에 - 물론 기타를 아주 잘 치면 기타만으로도 멋진 곡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 기타는 손을 놓은 지가 꽤 됐다. 

음악 감상, 작곡, 악기 연습이 매일 조금씩 반복되는 게 궁극적으로 내가 꿈꾸는 일과다. 창의성이 필요한 작곡, 인지능력과 유연함, 체력이 필요한 악기 연습, 시류를 타는 음악(감상) 모두 미뤄뒀다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제때에,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좋다.

특히 악기 연습은 일종의 속박이다. 스스로 채운 족쇄다. 소파에 편히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다. 실수를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긴장감, 극복, 성취감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 속박을 견디면 원하는 곡을 칠 수 있는 자유에 이르게 된다. 그 곡만 칠 수 있는 데 그치지 않고, 비슷한 수준의 곡은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칠 수 있게 된다.

연습을 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것도 그 자체로 좋긴 하다. 여유. 하지만 원하는 곡을 칠 수 없는 속박에 갇힌다.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갇히는 것이다. 

자유를 잘못 쓰면 속박에 갇힌다. 건강이라는 자유를 잘못 쓰면 병에 걸리고, 사람을 만나는 자유를 잘못 쓰면 배우자나 연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삶도 올무에 얽매인다. 돈이라는 자유를 잘못 쓰면 재정적 파탄이 나거나 궁색한 가난뱅이가 된다.

속박을 잘 쓰면 자유를 얻는다. 이른바 좋은 습관이라는 것들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식습관을 조절하고,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다. 이런 행동들은 병, 무지, 무관심, 공허함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속박을 잘 쓰면 자유가 되고, 자유를 잘못 쓰면 속박이 된다. 시간이라는 열차는 멈추지 않고, 우리는 거기서 뛰어내릴 수도 없다.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속박으로 바꾸고, 속박을 자유로 바꾸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어느 정도 할 것인가? 궁극적인 자유는 형이상적인 것만도 아니고,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과 기분 모두 자유가 필요하다.

당시에 필요해서 산 물건이 머지않아 짐이나 쓰레기가 될 수 있듯이 자유를 위해 한 일도 나중에 속박이 될 수 있다. 우리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기에 우리는 계속 물음을 던지며 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진정한 자유는?

진정하고 완전한 자유는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하더라도, 찾으려는 노력마저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어쩌면 고인 물 위의 썩은 부유물처럼 돼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속박을 잘 쓰면 자유가 되고, 자유를 잘못 쓰면 속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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