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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l 04. 2022

어리석은 여행

 


구례에서 곡성으로 가는 길은 아담하고 예쁜 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해안이 아닌 강을 따라 난 길이 이렇게 긴 건 처음이다. 찜통더위 때문에 여행을 후회하던 와중에 그나마 강을 바라보며 하는 긴 드라이브 코스가 제법 위안이 됐다.

내가 사는 진주의 남강도 아름답긴 하나 홍수  방지와 식수 해결을 위해 상류에 만든 거대한 남강댐 때문에 생태계가 많이 파괴되다 보니 상당 부분 죽은 강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물을 막았다 풀었다 하는데, 강을 서식지로 하는 온갖 생명들이 어찌 맘 편히 번식할 수 있으랴.


당초 우리의 계획은 구례 하루, 곡성 하루 이렇게 여행하는 거였다. 구례에서의 첫날, 무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상 갈 데가 없었다. 검색해서 나오는 명소들은 대부분 절, 계곡, 강가였다. 계곡은 주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일 게 뻔했고, 오랜 가뭄으로 계곡물도 말라 있을 터였다. 강가에는 더위를 피할만한 커다란 나무 그늘이 없을 것이고, 그나마 선택한 절은 도착 하자마자 숙소 키를 반납 안 하고 와버린 중년부부의 건망증 때문에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더위 때문에 이것저것 다 귀찮고, 팥빙수나 사 먹자 싶어 검색 신공을 펼쳐도 맘에 드는 데가 선뜻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원래 취향이 까탈스러운데 나이가 드니 오히려 더 심해지는 거 같다. 팥빙수에 아이스크림이나 시리얼 같은 잡것(?)이 들어가면 안 되고, 설탕을 떡칠한 통조림 팥을 써도 안되고, 유지방을 먹으면 속이 편칠 않아서 우유도 되도록 안 들어가야 한다. 깨끗한 인테리어를 무기로 별로 맛도 없으면서 가격만 무지 비싼 카페는 거부감이 들어 싫다. 휴~ 갈 데가 없네. 검색도 지친다. 겨우 재래 시 안에서 한 군데를 낙점했으나 간판이 오래돼서 안 보이는 건지, 폐업을 한 건지 네비를 따라 가봐도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구례 여행에 지쳐 버린 우리는 구례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곡성 숙소로 떠나기로 한다.  좁은 게스트하우스지만 그냥 샤워하고, 에어컨 틀어고 쉬어야겠다.


힘들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깨끗하긴 했으나 방향제 냄새가 너무 독했다. 온통 하면 안 되는 것과 변상 조치하겠다는 엄포만 가득 적힌 객실 안내문에, 본 적도 없는 주인장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장사를 이런 식으로 하니 크게 못되고, 이러고 있지. 휴양림만 다니다가 게스트하우스 처음 와 봤는데, 역시 우리는 휴양림 체질인가 보다."


그래도 곡성까지 와서 이 좁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날려버리는 건 좀 아니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날 저녁 괜찮은 장소 두어 곳을 다녀왔고, 다음날 괜찮은 절에 가서 그늘에서 좀 쉬고 계곡물에 발도 담글 수 있었다는 것.


명소와 맛집을 검색해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이런 여행 패턴에 솔직히 좀 지친다. 산과 계곡과 강과 바다... 좁은 우리나라의 볼거리는 좀 뻔한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을 보러 다닌다고 하지만 공원, 절, 산, 바다 모두 순수한 자연은 아니다. 테크나 화장실, 벤치 같은 편의 시설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 수 있고, 문명의 이기인 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도 없다. 아름다운 강변길 드라이브도 콘크리트 포장길이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닌가. 자연친화적인 여행은 환상일 뿐인가. 일상 탈출을 위한 여행이지만, 운전에 지치고, 상술에 지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과 고물가로 인한 밥값, 기름값에 울상이 된다.


조용히 집에서 에어컨 쐬며 있는 게 정답일까? 한정된 공간에 갇혀 에어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일면 감옥이다. 폭염과 차들과 소음들과 자본주의의 상술로 가득 찬 바깥세상도 어쩌면 거대한 감옥이다. 지구가 거대한 감옥이 된 걸까?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내가 무슨 수행자의 길을 걸을 건 아니다. 여전히 먹을거리, 좋은 경치를 좋아할 게 뻔하다. 끝없는 욕망 덩어리인 인간들과 그중에 하나인 내가 좀 애잔하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해탈이란 없다. 이 복잡하고 아등바등한 삶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답게, 고상하게, 과하지 않게 살 수 있나를 고민할 뿐이다.


그래도 어제 입장료 6000원을 내고 들어간 어류 체험관에서 길 잃은 새끼 새 한 마리를 구조해서 자유를 줬다. 좁은 수족관 안을 무한정 빙글빙글 도는 물고기들은 불쌍했고, 더위를 피해 그걸 보러 온 우리 부부와 애기들 구경시키느라 온 젊은 부부들 모두 측은했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연 아닌 자연에 갇힌 느낌.


하지만 한 마리 어린 새에게 자유를 줬으므로 입장료 6000원의 가치는 수십 배로 상승했다.


낯선 실내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던, 탈출구를 찾아 헤매던 그 새처럼 50이 된 나도 자주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겠지만... 너무나 속시원히 잘 날아가던 그 새가 나에게 말했다.


박씨를 물고 올게.
결코 자유를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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