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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10. 2023

자유에 대한 소고

1. 직업에 귀천이 있다?


자퇴를 하고 공장에 다니던 시절, 비참한 기분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서 외형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장에 다니는 모든 분들은 초라한 직업을 가진 것인가? 못 배우거나, 학교 다닐 때 땡땡이 쳐서(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이런 결과를 맞이한 것인가? 공돌이, 공순이라는 공장 근로자를 비하하는 말들. 공장 노동자이면서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거나,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들이 많다. 나는 왜 공장 근로자이던 시절에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을까? 그건 목적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공장에 다니는가?'에 대한 목적 말이다.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서라든가, 3년 후의 목표를 위해서라든가, 공장에서 상급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목적과 목표가 없었다. 생계를 위한 선택지가 그때는 그곳 밖에 없었고, 그곳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매일 억지로 출근했고, 그래서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컴퓨터가게를 할 당시 매출이 줄어 새벽에 배달 알바를 할 때도 그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영업을 잘해 바쁘게 움직이는 가게들에 비해 매출이 쪼그라들어 알바를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단지 더 효율적이고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생계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준비하고 강구할 뿐이다. 새벽 알바가 하기 싫었다면 역시 매출을 다시 높일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을 했어야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꿈을 이루는 경우가 희귀할 정도다. 불가피하게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많은 세상살이에서 필요한 건 비전과 전략이다. 물론 비전과 전략을 압도할 만큼 스트레스에 파묻히게 된다면 우선 심신의 치료부터 받아야 할 수도 있다.



2. 직장 = 노예 = 감옥?


대기업이나 '사'자 붙는 전문직은 아니지만 컴퓨터 정비기사나 지역신문 기자는 그나마 중하위권의 신분(포지션)은 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체면상 말이다. 하지만 남이 나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대해 과연 몇 초나 생각할까.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그나마 몸이 편한 이런 직종에서 다시 노가다 등의 몸쓰는 일로 돌아가는 건 신분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한 것 같다. 다시 그런 일을 하기는 싫었다. 나이도 벌써 50이 아닌가. 기반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다시 현장직으로? 그런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


며칠 전까지 다니던 회사는 인간관계 트러블, 업무 특성상 폐쇄된 공간, 행동과 이동의 제약 등으로 최근에 와서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 내게 무례하게 구는 상대방과 일일이 응대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싸우기도 싫었다. 몇 번 언질을 줘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 지금껏 바뀌지 않은 성인이 내 말 몇 마디에 변화될 리 없다. 사소한 건망증과 실수에도 면박을 주니 대응하기도 애매하다. 점점 우울에 빠져들고, 사람이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사소한 업무까지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처음엔 몸이 편하고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언제나 대기조요, 눈치밥이다. 창작열에 불타던 나는 어느새 체제에 순응하는 바보멍청이가 된 것 같다. '어! 이건 내가 아닌데? 내가 점점 왜 이렇게 돼가지?'


그러던 와중에 작년 투자 열풍 기류에 휩쓸려 빚투한 2000만 원의 빚이 현실로 다가왔다. 쥐꼬리 박봉은 급여통장 입금 이틀 만에 마이너스가 됐다. 나는 투잡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오를 대로 올라 조여오는 대출 이자와 원금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투잡을 미친 듯이 알아보니 가장 접근이 쉬운 일이 배달대행과 대리운전이었다. 나는 나의 생존력을 테스트도 할 겸 우선 차로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카카오 대리운전기사 등을 해봤다. 이런 류의 일을 디지털플랫폼에 의한 긱노동(gig work)이라 한다. 관련 책도 한 권 읽었다.새라 케슬러의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는 이러한 긱노동의 명과 암이 실사례를 통해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러한 긱노동 - 우버, 아마존 등이 대표적 사례 - 이 유행했단다.


일을 해보니 '오호라!' 나와 제법 잘 맞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해서 원하는 만큼만 번다'



3. 퇴사


여러 부업거리에 대한 간보기를 마친 후 메인 부업을 배달대행 라이더로 정하고,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등록을 했다. 오토바이, 방한장비 등 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동안 투잡을 했다. 투잡까지 마치면 밤 11시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피곤하고, 하루가 너무 허무하다란 느낌에 맥주캔을 따는 날과 피아노 연습을 건너뛰는 날이 많아졌다. '빚 갚기도 좋지만 빚 갚기, 돈에 너무 매몰되면 안 되는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가며 해야지' 나에겐 음악과 독서, 글쓰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기에서 내 미래의 일말의 가능성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퇴사에 대한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봉에 저당잡혀 하루 종일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느니 나가자! 오토바이가 위험하고 야외에 노출돼서 춥고 덥고 몸이 좀 고달프긴 하겠지만 살아있는 느낌은 날 거야. 대기업 부장도 아닌데 크게 미련가질 것 뭐 있나. 여기 월급 정도는 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벌고, 더 벌 수도 있을 거야. 안일함과 체면만 버리면 돼!'


충동일 수도 있는 욕구를 조금이라도 자제하기 위해 책도 읽었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퇴사 이후의 삶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했다.



4. 자유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직장에서 제대로 된 속박(내 기준)을 겪고 보니 내가 여태껏 자유에 대해 제대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독립생존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는, never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느낀 자유들.


출퇴근이 없는 자유 - 겨울철에는 해뜨기 전에 출근 준비해서 해지고 나서 집에 돌아온다. 출퇴근 시간까지 꼬박 10시간을 회사에 바친다. 매일 뜨는 아침 햇살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다. 월급의 노예. 퇴사한 후 휴대폰 알람을 모두 꺼버렸다. 기상, 출근 10분 전, 점심시간 종료 알람. 알람이 없다니! 날아갈 것 같다.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안 해도 되는 자유 - 내게 무례한 그 사람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나와 맞지 않을 뿐. 애인도 아닌 그와 매일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고통. 월급을 포기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내식당에서 해방 - 올드보이의 최민식도 아니고, 사육 받는 듯한 식단이었다. 1년 내내 일주일 식단이 거의 똑같다. 영양사의 창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 밥값이 싸니 닥치고 처드시라고? 먹는 게 큰 낙인 한 인간으로서 식단도 존중받고 싶다구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자유 - 여기가 갑갑하면 저기로 간다. 앉아있기 불편하면 누울 수 있다. 내 집에는 허리가 편한 듀오백 의자와 편안한 캠핑의자도 있다. 일을 하기 싫은 시간에는 쉬어도 되고, 자도 된다. 재정이 펑크만 안 나면 된다. 반면 직장은 제한된 공간, 싸구려 의자, 퇴근까지 억압된 시간...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점 아닌가. 왜 당연해야 하나? 벗어날 수 있으면 벗어나야 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는 여행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전에 대한 자유 - 긱노동, 프리랜서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 물론 직장생활도 퇴근 후 자기계발을 할 수 있지만, 해뜨기 전에 나가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귀가하는 만큼 퇴근 후 다시금 활력을 내기가 쉽지 않다.


품위유지에 대한 자유 - 직장에 나갈 때는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형편이 어려워도 그럴듯한 옷을 계절별로 사야 하고... 후줄근하게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출근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겠는가? 지금 일은 그럴 필요가 없다. 방한장비와 헬멧 속에 숨어있는 나를 잘 볼 사람도, 잘 보일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ㅎㅎ


소음에 대한 자유 - 직장에서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수많은 소음에 노출되고 시달린다. 전산 장비 돌아가는 팬소리, 나와 상관없는 업무나 잡담에 의한 말소리 등등.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다면 나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매일매일 확인하기 힘들다.


이 외에도 많을 것이다. 자유는 정말 디테일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탑승 수속을 밟지 않으면 외국에 갈 수 없다.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순 없지 않은가. 꼼꼼하게 골라 찾아간 맛집이 맛과 서비스가 엉망이면 기분이 상한다. 내가 선택(강제가 아닌)한 그 자유의 결과가 훼손됐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설레는 맘으로 떠난 기차나 버스 여행에서 개념 없이 떠드는 옆 승객 때문에 조용히 지낼 자유를 침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는 물 흘러가듯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내버려 두면 침해당한다. 적을 만들어 싸우기보다 - 물론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 내 길을 잘 닦아 그 길로 조용히 가면 된다.



5. 결론


자유는 너무나 소중하다. 나이가 들수록 절실히 깨닫는다. 자유에 대한 인식과 기준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정보의 바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보의 쓰레기더미에서 헤맬 수도 있다. 기쁨을 위해 찾아간 곳이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다. 욕심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다. 무엇을 잃을지에 대한 자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완수하면 자유가 주어진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가 월급을 볼모로 내 자유를 억압하는, 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그 자유는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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