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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18. 2023

어, 음식점 사장님 말씀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랑 똑같네


어젯밤 9시, 늦게 퇴근한 아내와 함께 어탕을 먹으러 갔다. 이 집 어탕은 단호박을 많이 넣어서 비린내가 안 나면서 담백했다.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도 중국산 김치 따위가 아닌 집밥에 걸맞은 반찬이었다. 어탕은 근기가 부족한데 고기는 부담스럽거나, 나같이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보양식으로 좋다.


배달 라이더를 하면서, 배민(배달의 민족)을 이용하지 않는 식당 사장님들의 의중이 궁금했다. 배민에 들어가는 고정비 때문에 배달 손님을 포기하는 건 소심해서 투자를 못하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 9시면 거의 마칠 시간이므로 홀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왜 배민을 이용하지 않는지 물어봤다. 사장님 왈 '홀 손님 쳐내기도 버거워서 배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거였다.


이 말을 시작으로 사적인 이야기가 오가며, 사장님의 인생 드라마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족발, 막창부터 음식장사라면 안 해 본 게 없다는 사장님. 가게가 망해 7000만 원을 빚을 졌을 때는 소위 '인생 막장에 간다'는 OO타이어 공장에도 가봤는데, 사람이 있을 곳이 못된다(작업환경이 매우 열악)는 생각에 7개월 만에 그만두셨단다.


- 이하는 사장님 스토리.


하는 가게마다 대부분 잘 되긴 했는데, 몸이 너무 고돼서 빨리 돈 벌고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 막창을 팔 때는 돈은 잘 벌었는데, 막창이 건강에 그다지 좋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즐겁지 못했다(꺼림직했다). 지금 파는 어탕은 몸에도 좋고, 돈도 벌어다 주기 때문에 일하는 게 즐겁다. 게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투망 던지는 게 취미다. 홀에 크게 걸린 경호강 사진도 내가 타이밍 맞춰서 휴대폰으로 찍은 거다.


- 내 썰도 조금 풀어놨다.


컴퓨터 가게를 10년 넘게 했고, 그 이전에도 이런저런 장사를 제법 해봤습니다. 지금은 박봉과 인간관계 스트레스 때문에 퇴사하고 배달 라이더를 잠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아내와 배달 위주로 작은 분식집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요. 그래서 배민을 하시는지 여쭤봤어요.


사장님 답변


라이더는 당장 그만두세요.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걸면 안 돼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돈 나오는 공장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잠깐 직장 생활할 때, 월급 가지고는 당시 7000만 원이었던 빚 갚기가 답이 안 나와서 그만뒀어요. 나는 이 어탕집을 300년 생각합니다. 서울에 어탕 메뉴 한 가지만으로 OOO 원의 매출을 올리는 집이 딱 하나 있어요.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입맛이 있기 때문에 수백 번 끓여봐야 그 공통된 입맛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어요.



사장님 말씀의 요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돈을 보고 일하면 오래, 끝까지 못한다. 선한 가치(건강 등)를 위해 하면서 돈도 버는 일이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 나오는 공장(돈나무)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한 우물을 파야 한다.            


어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동안 책에서 수없이 봐왔던, 부자들이 하는 이야기랑 똑같다. 그런 유의 자기 계발서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사후확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늘 있었다. 어쩌다 운 좋게 잘되고 나서 '나 이렇게 해서 잘 됐다' 하는 식 말이다. 그러나 찐현실인 식당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책에서 배우겠다는, 책을 통해 변화해 보겠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책과 현실에서 하는 이야기가 일치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놓지 못하는 음악과 글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또 섰다. 돈을 위해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돈이 안되는 꿈을 놓아버리면 돈도 못 벌고, 꿈도 못 이루는 어중이떠중이가 된다. 그리고,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말을 실천하면 삶에 답이 있겠구나.




날씨가 유난히 추운 늦은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황량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서글픈 생각도 든다. 한편 자유롭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책 읽고, 실천하고, 기록하고, 글 쓰고, 피아노 연습하고, 음악 공부하면 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오늘 인생 선배 식당 사장님의 말씀이 그런 확신을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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