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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r 06. 2023

50살 아저씨의 초등학생 5학년 팬

팬이 있는 삶의 의미


서로 백수였을 때 만난 아내와 나는 직업훈련원에 뭘 배우러 갔다가 우연한 사건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눈이 맞았다. 너무 어렸고 철부지였던 우리는 미친 듯이 연애에 빠져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처갓집의 반대를 피해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다가 마산의 허름한 달셋방에서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살림이라는 현실 앞에서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나는 우선 일용직 막노동으로 연명하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아내와 함께 노점 호떡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어떤 계기로 호떡 장사를 시작할 마음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아내와 둘이 마주 앉아서 '도대체 뭘로 먹고 살 것인가'를 연구하다가 나름 나온 묘안(?)이 호떡 장사였던 것 같다. 시장 상인용 손수레와 앵글을 개조해서 직접 이동식 가판을 만들었다. 그때도 음악을 좋아해서 차량용 배터리와 앰프를 가판에 달아 음악도 빵빵하게 나오게 만들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비어있는 시골집에 내려가 가판을 제작하는 한편, 계속 호떡 반죽 만드는 연습과 설탕이 안 터지게 굽는 법을 연습 또 연습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완료됐다고 느꼈을 때 형이 일하는 마산의 나이트클럽 부근에 방을 얻고, 장사 자리를 물색했다. 썩 좋아 보이진 않지만 유동인구가 제법 있을 것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버스도 다니고, 인도도 제대로 없는 좁은 도로였지만 위쪽에 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었고, 마산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공장 근로자들도 제법 왔다갔다 하는 동네였다.


우리의 호떡 반죽은 설탕이 계속 터지고 삐져나왔지만, 호떡집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하긴 주변에 호떡집이 없었으니까 누가 장사를 했더라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의 어린 부부가 먹고살려고 장사하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손님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다. 설탕이 터진 호떡을 싸줘도 요즘처럼 클레임 거는 손님도 없었다. 그때 우리집 호떡의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아마 주변 공장에 다니는 듯한 총각이었다. 퇴근길에 들러서 늘 호떡과 어묵을 사먹고, 10개씩 20개씩 호떡을 싸갔다. 장사는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서 호떡 반죽의 발효 기술과 설탕에 들어가는 부재료가 점점 업그레이드되었다.


계속 호떡 장사를 했더라면 그 단골 총각을 비롯해서 우리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단골손님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가게의 팬이 되었을까? 그래서 우리 장사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주고받았을까?


컴퓨터 수리 가게를 할 때도 팬이 많았다. 단골이었던 사모님은 판사 남편을 구박해가며 선생님(나)에게 컴퓨터를 잘 배우라고 했다. 또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고객의 컴퓨터를 고쳐줬는데, 내 솜씨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분의 직업이 의사라 제법 큰 규모의 의원에 PC를 납품하고 유지 보수를 맡기도 했다.


고급 오디오로 음향과 공간에 엄청 신경을 써서 뮤직 바를 오픈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썰렁한 가게에 단체 손님이 찾아왔다. 혁신도시의 어떤 공기업 사람들인데, 회식자리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서울 사람인 그 직원들은 역시 내 아이템을 알아줬다.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나는 DJ 역할을 하며 신청곡과 추억의 가요들을 잘 선곡해서 틀어줬다. 손님들은 흥에 겨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날 그 테이블 매상은 30만 원이 넘었던 것 같다. 회식 담당 간부로 보이는 여자분이 "아주 만족스러운 회식자리였다. 이런 가게가 지방에 있는지 몰랐다. 앞으로 종종 애용하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수제차와 커피를 파는 푸드트럭을 할 때도 팬이 있었다. 주말마다 공원에 나가 장사를 하면 아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늘 카페라떼를 사러 오는 새댁이 있었다. 내 솜씨는 인터넷을 통해 배운 솜씨지만 나름 고급 원료만을 고집했고, 손맛이 있어서 맛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슬라이스를 쳐서 담은 생강청과 싱싱한 (레몬으로 담은) 레몬청으로 만든 차도 인기가 좋았다. 무주 반딧불 축제에 장사하러 갔을 때는 내가 묵었던 여관의 주인 할아버지가 제법 먼 내 장사 자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찾아와 생강차 2잔을 사갔다. 가격이 싸지도 않았는데, 생강차가 너무 맛있어서 마누라랑 먹을 거라면서. 손을 다치고 이듬해 반딧불축제에 안 갔을 때, 아마 그 할아버지는 다소 서운하고 아쉬웠을 것이다.


지역 언론사에서 잠시 기자 생활을 할 때도 팬이 있었다. 대형마트 갑질 문제를 시리즈로 다룬 내 기사가 지역에서 제법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타 언론사 선배 기자는 그런 기사를 쓸 수 있는 내 배포와 글솜씨를 높이 샀다. 고졸 검정고시가 학력의 전부인 나는 지역 명문대의 법학과를 졸업한 선배의 칭찬에 내심 우쭐했다. 그 선배는 최근까지 계속 기자 일자리를 추천해 주려 애썼다.


호떡 장사, 컴퓨터 가게, 뮤직 바, 푸드트럭, 지역 언론 기자... 내가 벌였던 일마다 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 팬들의 존재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지겨워서, 장사가 안돼서, 동업자와 파투가 나서, 손을 다쳐서, 기레기 소리와 타의에 의한 글쓰기가 싫어서... 이런저런 내 사정과 핑계로 그 일들을 그만두면서 나의 아이템을 좋아해 줬던 그분들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벌여왔던 과거의 여러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유튜브와 네이버 오디오클립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던 수년 전, 스스로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디오클립에 올렸던 짧은 연주곡들. 구독자가 조금씩 늘었지만, 생계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연습 시간은 부족하니 업로드 횟수가 점점 뜸해지고 채널은 방치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생각 없이 들어가 본 내 채널에 이런 댓글이!!!




'도로시TH'라는 아이디의 구독자는 '요즘엔 왜 안올리시나요? 올라오는 날을 기다리는 중입니다!'라는 댓글을 1월 17일에 달았다.


그리고, 2월 10일에 다시 '요즘엔... 아니아니 이제는 안 하시는 건가요...'란 댓글을 남긴다. 아이디를 'J쩜P'로 바꾼 이 구독자의 정체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ㅎㅎ 어제는 '공부하면서 듣는데 너무 노래가 막 흥분되게 치지 않으셔서 공부할 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자주 듣습니당' 이런 댓글을...


나는 초등학생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든 적이 없다. 이런 5학년 팬이 생길 줄 정말 몰랐다. 이 댓글을 본 순간, 나는 라이더로 돈을 제일 많이 번 날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어린 학생의 삶에 내가 음악으로 도움을 준다니 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정말 헉! 소리 난다.


음악과 글이라는 종목, 이 정체성을 더 이상 바꾸거나 버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처럼 내 팬도 버리고 싶지 않다. 초등학생 5학년과 50살 아저씨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음악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아직 곡을 팔지 못했고, 피아노 실력도 어설프지만 진심으로 음악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도 말이다.


진심을 다한 요리는 돈을 받고 팔더라도 돈을 초월한다. 그 음식을 통해 손님과 셰프는 관계를 형성한다. 음식을 통해 손님이 삶의 위로를 얻었다면 셰프에게는 돈과 바꿀 수 없는 보람이, 손님에게는 감동이 주어진 것이다. 이게 사는 맛 아닐까.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삶 말이다.


초등학생 5학년 팬은 내게 엄청난 에너지를 선물해 줬다. 내가 가는 길이 헛되고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줬다. 나는 이 소중한 팬을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삶의 선택은 언제나 자유니까. 내게 달려있으니까. 아무도 내게 음악 하라고, 글 쓰라고 강제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제 그러고 싶지 않다. 한 번도 대면한 적도 없고, 돈을 가져다주는 관계도 아니지만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싶다.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게 된다. 내 삶에 들어온 선물을 차 버리는 격이다.


나의 소중한 초등학교 5학년 팬은 생계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혼탁해진 내 육체와 정신을 맑게 해줬다. 1년이 넘도록 음악적 무기력 속에 지지부진했던 나는 우선 피아노 치는 습관을 들여보려 노력하고 있다. 『해빗』의 저자 웬디 우드의 주장대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만드는 마찰력을 줄이고, 치고 싶은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초등학생 5학년이 50살 아저씨에게 삶을 가르쳐준다!


당신의 삶에도 분명 팬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삶에, 당신이 하는 일에 확신과 가치를 선물하는 당신의 팬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 팬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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