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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19. 2023

피아노 연습의 짜증을 분석하다


악기를 처음 배울 때는 누구나 의욕이 넘친다. 그러나 그 의욕의 정체는 지속 가능하고 온전한 의지보다는 유효기간이 짧은 감정일 경우가 많다. 들었던 음반의 사운드를 떠올리며 그럴듯하게, 멋있게 연주하는 자신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악기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는 자꾸 틀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도대체 언제까지 틀릴 건데 ㅜㅜ... 멋있고, 감정이 실린 연주는커녕 악보에 맞게 치는 것조차 버겁다. 이쯤 되면 절망이 찾아오고, 절망은 짜증으로 변한다. '제기랄, 안되는구나. 나는 안돼. 세상에 피아노든, 기타든, 바이올린이든 잘 치는 사람이 저리도 많건만, 나는 그저 음악을 듣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역시 난 재능이 없어. 예술은 타고 나야 돼!'


그래서 피아노 앞을 떠나고 기타를 던져 버리면 속이 시원하다? 아니다. 찜찜하다. 뭔가 이게 아닌데... 미련이 남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한 가지 확실한 건 짜증을 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짜증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러면 어떻게? 짜증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피아노 치기가 그냥 어렵다'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어떤 부분 때문에서 짜증이 나는지 정확히 디테일을 분석, 분류해야 한다.


내 현재 기준으로 초보자는 주로 세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저는 음악이론, 피아노 실력 모두 초보이니 틀린 점이 있으면 양해, 또는 댓글에 남겨주세요~^^)


첫째, 박자. 대중음악은 대부분 4분음 4박자인데, 이는 한 마디 안에 4분음표가 4개 들어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멜로디나 반주가 4분음표만으로 구성되진 않는다. 그러면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곡이 된다. 흔히들 박을 쪼갠다고 표현하듯이 대부분의 곡이 8분음표, 16분음표, 쉼표도 있다. 붙임줄도 있다. 이렇게 박이 쪼개지면 우리는 건반을 칠 때와 건반에서 손가락을 뗄 타이밍을 잘 계산해서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틀리지 않고 쳐내야 하는 게 1차 장애물, 스트레스다.


둘째, 악보 보기. 초보자는 당연히 악보 보기에 익숙지 않다. 오선지에서 멀리 떨어진 음표는 음정, 계이름을 계산하는 데 한참 걸린다. 악보를 제대로 보기도 만만치 않는데, 손가락이 틀리지 않으려면 건반도 봐야 한다.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디를 봐야 하지? 집중력 혼란. 2차 스트레스.


셋째, 운지. 피아노 건반은 검은 건반까지 옥타브를 오르내리며 엄청 많은데, 손가락은 양손에 다섯 개씩 뿐이다. 손목을 돌리고 꺾고... 여러 방법으로 어찌 됐든 건반을 쳐내야 한다. 친절하게 운지 번호를 알려주는 악보도 있지만, 운지 번호에 완벽한 정답이 있는 건 또 아니다. 악보를 따라 쳤는데, 갑자기 다음 음을 칠 손가락이 없어지면 연습은 또 일시중지된다. 3차 스트레스.


보통 초보자는 위 세 가지 장벽,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겪는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대충 계속 치다 보면 되겠지' 하며 치는데, 상당한 짜증이 일어난다. 내 생각에 그래서 성인들이 악기를 포기하는 비율이 높은 것 같다. '나이가 드니 머리도, 손가락도 마음대로 안 돼' 하면서. 또는 '나는 어려서부터 배운 전공자가 아니라 안 되나 봐' 이런 식이다.


어려움(문제)를 분석해서 분리했으니 이제는 천천히, 하나씩 공략하면 된다.


첫째, 박자다. 메트로놈 속도를 늦추고(나의 경우 보통 50 언저리), 연습할 마디 수를 줄인다. 2~4마디로. 그것도 어려우면 한 마디도 좋다. 처음부터 피아노로 치면 박자 셈이 더 헷갈린다. 손뼉이나 책상에 손을 치는 방법으로 박자 연습을 우선해본다.(Pianist RARA 라라의 피아노 스튜디오 - 음악 기초와 피아노를 잘 가르치는 유튜브 채널) 점8분음표, 16분음표, 붙임줄 등이 나타나서 박자 셈이 헷갈리면 비트를 8비트 또는 16비트로 나눈다. 4분음 4박자 한마디 기준이므로 8비트는 1박을 둘로 쪼개고, 16비트는 넷으로 쪼개면 된다. '따다 따다 따다 따다 / 따다다다 따다다다 따다다다 따다다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나누면 쪼개진 박을 세기가 쉬어진다. 1을 4등분 하는 것보다 4를 4등분 하는 것이 당연히 머리에 쉽게 들어온다. 이렇게 정수 단위로 박을 쪼개고, 메트로놈 속도를 늦추어서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이 온다. 음길이에 대한 감. 메트로놈 소리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손가락의 터치감을 느끼면 쾌감이 온다.


둘째, 악보 보기. 이건 악보를 자주 보고 익숙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악보는 음악의 언어니까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특히 오선지에서 멀리 떨어져 작대기가 많이 붙은 음은 높은음자리표(오른손), 낮은음자리표(왼손) 모두 '도'자리 정도는 기억해 둔다. '도'자리를 알아야 그 위치 아래 위로 음정을 빨리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운지. 틀린 운지로 오래 연습하면 그 형태가 굳어져서 고치려 하면 더 헷갈리므로, 위 두 가지 문제가 연습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면 운지를 점검한다. 더 편하게 누를 방법은 없는지, 부자연스러운 운지를 하고 있진 않은지를 점검해 본다. 연습하다 보면 특히 안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만 느린 속도로 반복 연습한다. 이 역시 계속하다 보면 손가락이 어느 정도 돌아간다.


이렇게 각 3요소가 어느 정도 연습됐다, 익숙해졌다 싶으면 이제서야 동시 연습에 들어간다. 알아둬야 할 게 아직 양손 연습에 들어간 건 아니다.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 위 3가지를 순차적으로 연습한 후에야 양손 연습에 들어간다. 지금 하는 연습은 박자에 맞게, 악보를 정확히 읽으며(악보만 보고 치다보면 차츰 건반을 안보고도 칠 수 있다), 옳은 운지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한 손으로.


이게 각 손에서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이제는 마지막 미션, 양손 연습이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 앞에 욱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분석, 분류한 후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는 방식은 삶의 다른 부분에도 도움이 되고, 적용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서 난이도를 낮추고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지혜로운 전략이다. 스파르타식의 밀어붙이는 피아노(음악) 교육이 어릴 때는 통할지 몰라도 순발력, 인지력, 운동력, 적응력이 떨어지는 어른, 특히 중장년에게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기를 배우고 싶은 어른은 학원에서도 겉돌고, 혼자 골방에서도 끙끙대게 되는 것이다.






나도 『지은쌤의 30일 피아노 코드 반주』 23강 'Nothing Better' 전주 멜로디 연습을 엊그제 시작할 때는 짜증이 났다. 붙임줄이 많아 메트로놈 소리가 마디 시작이나 정박에 떨어지지 않으니 헷갈렸다. 3일 정도(하루 70분) 연습하니 오늘에서야 어느 정도 된다.


'굳이 이런 글을 써야 할까? 너무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나? 명색이 작곡을 한다는 놈이 이 정도 악보는 그냥 딱 쳐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처럼 속으로 끙끙대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쓴다. 3일 만에 이 악보가 그런대로 쳐진다는 것은 내게는 장족의 발전이다.


예수 고난 40일, 나는 피아노 습관 들이기 44일째다. 피아노를 잘 쳐서 작곡을 쑥쑥 해내고 버스킹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더듬더듬, 절룩절룩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상당히 재밌고, 성취감이 있다. 그래서 사회가 성숙할수록 과정을 중히 여기는 것 같다. 성장일기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놈의 <Someone Like You> 연습하느라 너무 놓아버린 이 책 진도에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 30강을 마치면, 이제는 단 4마디라도 작곡 습작과 피아노 연습 습관을 병행해 보려 한다. 드럼 기초가 없다고 곡을 안 만드니 너무 오래 무작인 상태가 돼 버렸다. 어설프지만 열정이 넘쳤던 시절에 만들었던 곡들이 유튜브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 자체만으로 내게 상당한 추억과 동기부여가 된다. 깔끔하고 세련된 곡은 아니지만 왠지 웃음이 나는 곡들이다.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는 당신, 나와 함께 삐걱거리며 가 봅시다. 끝까지 못 가더라도 - 사실 끝이란 없지요 - 가는 만큼 재미난 일들이, 모험거리, 이야기거리들이 생긴답니다. 그게 사실 인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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