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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29. 2023

지난한 과정을 견디고 공부하는 마음


지난 목요일에는 수십년 드럼을 친 후배에게 다녀왔다. 지역 행사도 뛰고, 강의도 다니는, 밴드 하다 알게 된 후배다. 프로 작곡가에게 곡 피드백을 받을 때 제일 지적을 많이 받은 파트, 내가 제일 자신 없는 부분이 드럼이다. 그렇다고 다른 악기 파트가 막 자신감이 넘치는 건 당연히 아니다. ㅎㅎ


드럼이든, 피아노 반주든 샘플들을 막 짜깁기해서 곡을 만들어 놓으면 뭔가 어설프게 지은 집 같아서 어디 가서 떳떳하게 내놓기가 좀 그랬다. 하여 드럼(리듬)을 기초부터 좀 배워야겠는데, 리얼 드럼을 배우기에는 시간이 없다. 어디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이다.


드럼 악보를 보고 DAW에 찍어 보세요. 곡 카피를 최대한 비슷하게 해 보세요. 곡은 전체적으로 리듬이 통일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피아노 연습에. 화성학 공부에, 드럼까지.. 산 넘어 산인가? 이 나이 들어 왜 음악을 한다고 해가지고 사서 고생인가. 음악을 포기하고 적당히 편한 직장에 들어가 생계를 해결하고, 주말에 여행이나 다니며 살면 더 편하고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려는 삶은 너무 얕은 삶이 되기 싶다. 얕은 삶은 고통이 얇아진 만큼 기쁨이나 성취, 행복도 얇아진다. 마치 일정을 정해 놓고 관광코스를 한 바퀴 도는 여행같이. 그 동네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슨 관습이 있으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그런 것들을 알고 그 안에서 함께 겪어봐야 그 동네가 기억에, 가슴에 남고 진정한 여행이 된다.


하고 싶어 했던 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피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글쓰기나 요리나 다른 관심 분야로 눈을 돌리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일 자체를 즐기거나 그 일을 통해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똑같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 혼자 즐기는 것조차도 깊이 알아야, 공부해야 더 즐길 수 있다.


30대에 웹프로그래밍을 어설프게 하다가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C 언어 책을 두 권 독학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창조 행위는 재밌었지만, 수학 머리가 없다고 믿는 내게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 단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내가 프로그래밍에 더 깊은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포기한 게 맞다.


사람을 알아가는 데도 고통이 따른다.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건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는 단계가 우선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정리 정돈을 못하는 아내를 이해하는 데 나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그건 아마 나에 대해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계를 위한 일에도 고통이 따른다. '음악'이란 이상은 고상하고, '라이더'라는 생계 수단은 하찮고 천하게 여겨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의 저자 이병철의 말처럼 라이더는 현재 음악을 하려는 '나'를 지키는 수단이므로 이 또한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찮은 생계 수단은 힘들어서 못하고, 멋진 이상에 대한 도전은 어려워서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24시간 눈뜨고 있는 인생 앞에서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숨기라도 할 것인가.


삶 자체가 공부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남의 고통을 등한시할 것이다. 나만 즐거우면 되니까.


아침마다 치는 피아노 - 피아노 습관 들이기 - 는 하루를 겸허하게 시작하게 해 준다. 하루 한 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확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 과정에 고통이 있어서 하루를 까불지 않고 조심하게 해 준다.


이제는 과정도, 과정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내가 1000일 동안 거의 매일 피아노 연습 - 습관 들이기 - 를 실행한다면 그것 자체가 콘텐츠가 될 것이다. 1000일 후에 내 실력이 월등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공부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것은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서툰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동참하려는 마음이다. 음악은 거대한 산이지만 또 작은 조각으로 매일매일 내게 친구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라이더와도, 음악과도 친구가 되어 매일매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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