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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15. 2023

음악과 책 - 어머니와 아버지


책이 든든하고 말없이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아버지라면 - 저자들의 수많은 인생 경험과 가슴 아픈 사연들, 연구와 통찰의 결과물들, 지혜들 - 음악은 사소한 - 결코 사소하지 않지만 - 내 기분까지 챙겨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아무리 명언을 새기고, 성인의 말씀을 경청한들 우리는 시시때때로 우울과 슬픔과 쓸쓸함과 공허함에 빠지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어 커다랬던 흥이 시시하게 사그라들기도 한다. 인생은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 음악이 마치 반려동물처럼, 친구처럼 우리를 위로해 주고 다독여 준다.


아버지,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더 이상 어릴 때처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될 때 책이 아버지처럼, 음악이 어머니처럼 의지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 어머니만큼은 당연히 못 되겠지만 책과 음악을 섬세하게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책과 음악이 하는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 비록 혼자일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공감할 수 있다. 아들이, 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곤경에 처하면 부모는 그것을 해결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면 그 수난을 대신 받기를 원한다. 마치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처럼.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심성이 아닐까.


자식이 속을 썩이면 부모 속을 썩였던, 지금도 썩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변변찮은 자식에 훌륭하지 못한 부모. 하지만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 나는 완전하지 못한 채로, 훌륭하지 못한 채로, 부족한 채로 자식을 사랑한다.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책과 모든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없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도 끝이 없다.


사랑은...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파본 적이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자식의 허물은 곧 잘 키우지 못한 부모의 허물이다.


타인이 고통을, 설령 그 대상이 가족일지라도 내가 10분의 1이라도 제대로,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기에 인간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조금 더 고등 동물이 되기 위해서, 고매한 인격체가 되고 싶다면 타인의 고통을 비슷하게라도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세상이 두려울 때 든든한 아버지의 말씀 같은 책들을 가까이하고, 세상살이가 외로울 때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보자. 내가 두렵고 소심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타인을 안아줄 수 있고,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에 외로운 인생들을 위로할 수 있다.




그런 공감이 있기에, 여전히 두렵고 외로운 우리지만 용기를 내어 내일을 살아볼 수 있다. 두려워하고 외로워하는 타자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할 수 있다. 도서관의 모든 책들이 아버지의 든든한 말씀이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어머니의 위로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오늘 아침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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