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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ug 08. 2023

이번 생은 글렀을까? 집착과 소망


여행을 하고 싶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그런데 돈이 없다. 그러면 가장 돈이 적에 드는 여행을 한다. 집 주위를 걷는다. 집 주위의 산에 간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한다. 도심 외곽의 거리를 걸어본다. 배낭을 메고 캠핑 장비로 잠자리를 해결한다. 그것도 안되면 노숙을? ㅎㅎ 이것도 여행이다. 여행은 경험이므로. 과연 이 여행은 재미없을까.


해외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다. 유럽여행을 위해 1년이든 3년이든 돈을 모은다면, 그 과정도 여행이다. 하지만 돈을 모으면서 내 건강과 나이, 현실을 잘 고려하고 현실과 잘 타협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갈 그날만을 위해 살지는 마라. 그날의 해외여행만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일류 식당이나 맛집에 갈 돈이 없다. 재래시장이나 마트 떨이 시간에 가서 식재료를 최대한 저렴하게 사 온다. 나만의 요리를 해 먹는다. 시장과 정성이 반찬이고, 맛이다.


곡을 써서 팔고 싶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곡이 팔리지 않으면 자신에게 세일즈 하면 된다. 가수 싸이의 경우처럼. 가수나 연주자가 되고 싶은데 불러주는 사람, 무대가 없다면 버스킹을 하면 된다. 그 행위 자체가 내게 즐거움이라면 안되는 일은 없다. 그냥 하면 된다. 큰 것, 많은 것, 주목받는 것만 바라는 욕망의 관성 - 자본주의적 사고 - 을 버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궁상맞을까? 마음이 풍요로우면 결코 궁상맞지 않을 것이다. 밤이슬을 맞으며 뼈가 삭을지, 생명의 신비함을 느낄지는 결국 마음의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이 소망, 현실적인 소망이다. 소망 안에서 운을 바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운만 바라고 작은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것이 나쁜 것,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 'The End' 종착역이라 생각하고 그것에만 매달리는 것이 집착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꿈을 꾸는 것이 소망이라면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면서 이상만 좇는 것이 집착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놀라운 은혜, 대박의 희망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은 신의 영역이므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늘의 뜻보다는 나의 욕망을 기다린다.


소망은 요즘 같은 '대박 흠모 사회'에서는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소망은 살아가는 소박한 재미다. 삶은 대박을 좇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잘 누리는 것.


책을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오늘 단 한 줄이라도 읽어라. 그것이 당신과 책의 연애 시작점이 될는지 누가 아는가? 여행을 하고 싶은데 시간과 돈이 없다면 '동네한바퀴' 하라. 내가 몰랐던 동네의 새로운 구석구석들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이 가고 싶은 해외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면 된다. 해외여행을 당장 갈 수 없는 당신의 현실을 비참해하지 마라. 그것은 승과 패를 가르는 사고방식, 당신을 루저로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해외여행을 가게 될 미래도 행복해야겠지만 돈이 없는 당신, 돈을 못 모은 당신도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번 생은 결국 하루다. 이번 생은 글렀을까. 오늘 하루는 글렀을까. 아니, 절대. 결국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표를 수집하듯이 시간과 소망을 수집하고, 대단한 대중의 '좋아요'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소박하게 어울리며 재미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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