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세계 - 피아노 연습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연주. 제법 난이도가 있는 5단계 악보로 연습하고 있다. 치다 보니 이 곡은 연습하고 끝낼 게 아니라 조만간 시작될 내 버스킹의 단골 레퍼토리로 써야겠다 싶다.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이 부분이 어려워 5일 넘게 반복하고 있는데 이게 된다. 이전 같았으면 막막하고 짜증스러워했을, 복잡해 보이는 악보 앞에서 머슬메모리를 통해 내 손가락이 왔다 갔다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할렐루야!' 신이 만든 인간이란 생명체는 정말 놀랍구나.
나는 초등학교 때 미술 성적이 늘 '미'였다. 미술에 정말 소질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나이가 들어 조금 여유 있어져서 그림을 배우게 된다면, 그래서 데생을, 풍경화를, 인물화를 그럴듯하게 그려낸다면 그때의 기쁨은 또 어떨 것인가?
이러한 것은 안에서 발견하는, 안으로 탐험하는 놀라운 세계의 발견이다. 의사나 과학자가 아니라 인체의 신비를 이론적으로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경험을 통해 나는 놀라운 '나라는 세계'를 발견한다. 이 발견은 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주를 잘하게 되면 당연히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싶게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쓸쓸함, 공허함, 추억들, 사람들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겠지만, 듣는 누군가는 그의 안에 있는 세계를 떠올릴 것이다. 그 세계는 돌아가신 아버지, 고생하시는 어머니, 떠나간 애인이 될 수도 있겠지. 이렇게 안의 세계는 바깥으로 확장된다. 청중과 나는 직접적으로 대화하진 않지만 - 직접적으로 대화한다고 해서 우리의 교류가 직류 전기처럼 직접적일 수는 없다. 인간은 유일무이한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 이것은 불행이 아니다. 단 하나의 카피본도 없다는 것은 신의 놀라운 능력이자 인간의 고독한 행복이다.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섬뜩하지 않은가. -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의 세계를 다시 발견하고, 기억하고, 탐험한다.
바깥의 세계 - 통영 이순신공원
이순신공원에서 바라보는 통영바다의 야경은 해운대의 야경과 사뭇 다르다.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 같은 해운대 밤바다에 비해서 통영의 바다는 적당한 인공(人工)이 가미된 시골의 시멘트집 같다. 탁 트인 바다를 벤치에 앉아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이런 무료공원이 있었다니. 내 집에서 불과 60km 정도다. 새로운 발견이다.
나는 멋진 풍경, 감성을 자극하는 이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여러 컷을 찍는다. 낮도 밤도 아닌, 푸르스름하게 맞닿아 있는 바다와 하늘의 색이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어둠 속의 작은 점 - 등대빛 - 이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벤치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는 며칠간 바둥거렸던 생계의 고달픔을 상념 속으로 떠나보내게 한다. 바깥의 세계를 통해 나는 다시 안의 세계로 들어온다.
우주와 인체의 신비가 비등한 것처럼 안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는 놀라움의 보고다. 발견하려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땅속에 묻힌 5만 원권을 끝없이 캐내는 꿈처럼. 이것은 꿈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놀랍지는 않다. 우리의 박약한 주의력은 날마다 무언가에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내 곁에 비슷한 모습으로 늘 있는 짝꿍도 사실은 놀랍고 새로운 세계다. 내가 들여다보려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늘 비슷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그의 매력을 캐내어줄 약간의 의무감을 가짐을 의미한다. 단지 나를 봉양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 그가, 그녀가 나와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모르는 매력, 그의 세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공생하는 생명체의 조화이자 인류를 위한 작은 봉사다.
푸르렀던 잎이 시들어 낙엽이 되는 것은 노화일 뿐일까? 그것은 용도가 바뀐 성장일지 모른다. 나무 자신과 이웃한 나무에 양분이 되고, 지렁이에게 은신처가 되며, 가을을 누리는 우리에게 사각사각 소리를 들려주며 사색하게 하니까.
이 놀라운 안과 바깥의 세계 앞에서 너무 당당하고 도도하고 다 아는 듯하는 우리의 태도는 거만하기 짝이 없다. 경이로움을 느낄 준비가 됐는가? 당신의 일에 집중하면서, 지구를 여행하면서, 사물을 관찰하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면서...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이게 되네, 되네!'하며 느꼈던 경이로움을, 여행에서 느꼈던 그 어메이징을 확장하기 위해서, 나의 우주를 펼치기 위해서 나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여행을 할 것이다. 그 밖의 또 많은 삶의 탐험들을.
부정적인 표면만을 보고 닫혀있던 마음을 이 안과 바깥의 세계에 여는 순간 우리의 의심은 확신이 되고, 된장국에 빠졌던 리모컨을 세척·건조 후 그것이 다시 작동할 때의 기쁨같은 삶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