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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20. 2023

점입가경 - 잠식 or 자기확신


9월은 거의 놀다시피 했다. 경남음악창작소에서 진행하는 뮤지션 교육에 참여하느라 평일을 거의 빼먹고, 아내와 결혼기념일에 맞춰 충청도 여행을 다녀오느라 사흘을 소비했다. 또 처음 해보는 강의 때문에 강의 준비하느라 전날 하루, 강의 당일 하루... 이렇게 빼먹다 보니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통장 잔고가 줄어듦에 대한 불안과 아내의 잔소리에 대한 부담감에다가 뮤지션 교육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강의는 또... 새벽까지 강의 자료를 준비하며 열정을 불태웠건만 강의시간이 다 되어도 한 명도 오지 않는 수강생들. 다섯 명이 오기로 했는데. 10분, 20분 겨우 세 명의 수강생이 강의실에 도착했고, 어쨌든 나는 열변을 토하며 강의를 했다.


수강생 모집(7명)에 실패한 강의에 대한 실망, 뮤지션으로 해야 할 산적한 일들, 그렇다고 현실에서 돈이라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부담과 실망과 불안과 피로가 뒤엉켜서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가고... 영화에 보면 동네 양아치가 우연히 폭력조직에 몸담았다가 나중에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자초한 이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이야기해 봤자 이해받지 못할 것이고, 대부분 '성실히 돈을 벌고, 남은 시간에 음악을 취미로 하라' 정도로 대답할 게 뻔하다. 외롭고, 두렵고, 막막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마지막 신에서 탕웨이가 해변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썰물(파도)에 잠식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단순히 자살을 이야기하려고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게 아닌 것처럼 나의 이야기가 단순히 잠식에서 끝날 순 없다. 나는 이 혼란스럽고, 작아지고, 피로에 쩐 상황 속에서도 나의 세계를 다시 찾아야 한다.


다른 밥벌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음악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오토바이를 타야 하고, 음악도 꾸준히 만들어야 하고, 악기도 손을 놓긴 싫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있다. 부산에 있는 뮤지션과 싱글을 공동작업으로 하나 발매하기로 했고, 내가 만든 인트로 멜로디를 그 뮤지션이 마음에 들어 해서 곡 컨셉이 픽스된 정도다. 이 뮤지션은 기타 전공이라 컴퓨터로 작업할 수 없는 기타 사운드를 곡에 넣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게다가 나는 곡 공동 작업 경험이 처음이라 결과물의 완성도를 떠나서 무척 설렌다. 또 강사와 수강생으로 알게 된 젊은 친구는 작사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내 습작 멜로디를 여럿 보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가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 중년의 내 감성과 젊은 감성을 섞어보고 싶어서 그 친구와도 같이 작업해 보기로 했다. 아직 둘 다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게 나의 설레발과 운으로 인한 엄청난 소득인 듯하다.


거의 2년간 곡을 쓰지도, 발매하지도 않은 것이 작곡가로서, 뮤지션으로서 엄청 부담으로 다가와 있는 상태다. 계속 연습하고 있는 피아노를 어느 시점에서 조금 놓아야 되는데 - 시간은 한정돼 있어서 작곡 작업과 피아노 연습 중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 오늘 강의한 강사님도, 부산의 활동력 왕성한 뮤지션도 악기 연습보다는 곡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 내가 유능한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니고 세션맨이 될 것도 아닌데 악기에 너무 매달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이게 또 은근히 집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조금씩 발전하여 안되던 프레이즈가 연주되는 게 재밌고, 건반 터치로 인한 미묘한 표현력을 날마다 가다듬는 것도 선율을 창조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종의 창조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에 잠식당하지 않는 방법은 자기 확신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활로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라는 성경 말씀처럼 - 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글쓰기든, 작곡이든, 독서든 어떤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쓸모 있는 행위라는...


상황에 깊이 들어간 사람은 요란스럽지 않다. 마라토너를 보라. 조용히 숨고르기를 하며 스스로를 믿고 뛸 뿐이다. 그런 사람은 왠지 멋져 보인다. 내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빛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상황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데도 많은 사람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현재의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음들과 글들로 이루어진 멋진 기록들, 삶의 주마등 같은 이미지들을 남기고 싶다.




계속하겠다고 정하면 생각이 바뀐다


어릴 때 나는 전형적으로 연습을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언제든 피아노를 그만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그만두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피아노를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채 연습을 계속해 온 셈이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이제 피아노는 내게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것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만둘 수 없고 계속해야 한다면 어떻게든 즐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계속하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엉뚱한 시도도 해보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솟아났다. 예컨대 지루한 체르니 연습곡집을 제멋대로 강약을 표시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음표에 크레용으로 색을 입히고 이야기까지 써넣었다. 이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지루하던 악보가 탈바꿈해서 다채롭고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악보 읽기도 금세 물리기에 벼락치기로 악보 읽기를 끝내놓고 모범연주를 듣다가 문득 연주에 맞춰서 함께 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소절의 시작 부분만 맞출 수 있었지만 조금씩 칠 수 있는 음이 늘어났다. 또 모범연주의 멋진 선율을 마치 나 자신이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 연습을 통해 '악보를 좇아간다'는 감각을 제법 익힌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범연주와 함께 치는 것은 대중음악에서는 흔히 하는 연습법이라고 한다.


만약 내게 그만두어도 좋다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분명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마지못해 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왔기에 나는 피아노의 깊은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그것도 성인이 되어서야 말이다. 그것은 그만두라는 말 만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어머니 덕분이다. 그녀의 작전이 성공한 셈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 스미 세이코 p.30




그러고 보니 내게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한 분이 있다. 그래, 계속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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