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포기하는 당신을 위한 심폐소생술
200일 넘게 치고 있는 피아노.
기타와 씨름했던 지난날들, 여전히 늘지 않는 실력, 끈기 없는 자신에 대한 질책, 자책... 음악은 역시 천재들이 해야 하는 것인가? 타고나는 것인가? 의문과 회의 속에 방황했던 마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음악은 하고 싶은데 뭔가 잘 안돼서 답답하고, 나이는 들어가고, 그 마음 털어놓을 사람도 주변에 없고,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음악과 악기에 대한 욕망? 열정?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강의를 하고 싶었다. 책도 쓰고 싶었다. 천재가 아니라도 음악을 해도 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강의 기회가 먼저 왔다. 경남평생교육진흥원에서 <시민지식강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는 <피아노를 포기하는 당신을 위한 심폐소생술> 이란 강의를 기획했다.
처음엔 수강생 10명을 모집하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다. 4명에서 더 이상 수강 신청이 늘지 않았다. 최소 기준인 7명으로 모집 인원을 줄이고, 강의 시작일을 한 주 늦췄다. 나머지 3명이 쉽게 모집됐다. 나는 신이 났다. 다음 주면 이제 7명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인가?
한 주 전에 문자 안내를 했건만, 막상 실제로 온 인원은 단 2명이었다. 한 주가 밀리면서 수강생들이 많이 이탈한 데다가 초면에 전화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 문자로만 안내를 했더니 자신이 수강 신청을 한 사실을 잊고 있는 분도 있었다.
또 이탈을 하고, 추가 모집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2차시 강의에는 3명, 3차시에도 3명이 참석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강의했고, 재미가 있었다.
'건반이 없이 말로만 하니까 재미가 없어서 수강생이 안 오나?'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왜 안 올까? 내 강의가 따분할까? 전혀 공감이 안 되나?' 그런 와중에서도 기존 PPT를 보강하고, 새로 읽은 책, 새로 들은 뮤지션 강의에서 알게 된 내용을 추가하고, 사운드가 있는 강의를 해야겠다 싶어 연습용 샘플 음원들을 직접 피아노를 쳐서 녹음했다.
4강 전날 새벽 3시까지 이렇게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2~3명은 오겠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지. '오 마이 갓!' 4강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키보드와 스탠드, 노트북 가방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3층 강의실에 도착해서 키보드를 설치하고, 빔을 켜서 노트북을 연결하고, 텅 빈 강의실에 30분을...
울고 싶어라~ 이 마음.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음악이라는 장거리 마라톤을 하면서 사이드잡으로 강의란 걸 해보려고 했는데, 나는 강의에 소질이 없는 것인가? 열심히 글을 써도 브런치 구독자가 안 느는 것처럼 나의 콘텐츠는 공감을 얻지 못하는 스타일인가?' 미리 연락이라도 주면 좋았을 것을. 제일 멀리서, 제일 성실히 오신 한 분만 '요리대회가 임박해서 더 이상 강의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을 뿐, 다른 분들은 아무 연락도 없었다.
울고 싶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지막 5차시 강의의 참석 여부를 일일이 개인톡으로 물었다. 모두 다 참석이 불가하다고 한다. 'ㅎㅎㅎ 그래 폐강을 하자. 어쩌겠나? 내 한계가 여기까진가 보다. '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또 일일이 폐강 소식을 알렸다.
다음날 진흥원 담당자에게 이러이러한 이유로 폐강을 하겠다고 하니 "수강생과 협의하에 날짜 변경이 가능하고, 늦게는 12월까지 연기할 수도 있고, 특강 형식도 가능한데, 폐강을 하시겠어요?" 한다. '어?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미련이 남는다. 또 찌질하게? 구차하게? 수강생들에게 '날짜 변경이 가능한데 수강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예상 밖이다. 한 분이 수강을 하겠다고 한다. 요리대회 그분은 No 가 아니라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다.
결국 날짜를 변경한 4차시에는 세 분이 오셨다. 나는 전 주에 못했던 강의에 대해 한풀이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다. 5차시 강의는 아무도 시간이 안된다고 해서 결국 4차시에서 종강을 하기로 했다. 대신 5차시 강의는 특강 형식으로 11월 중에 다시 수강생을 모아 2시간 진행하기로 진흥원 담당자와 협의하였다.
'피아노 심폐소생술' 단톡방에 이 방을 없애지 않고 음악적 교류를 하자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뜻밖에 강의에 대한 감사 글이 올라온다. 세 분이다. 그중 요리 대회 그분은 제일 길게 감사 인사를 올리셨다. '많이 알려주시려고 하시는 게 눈에 막 보였습니다.' 하신다.
쪽박 강의의 반전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완벽하진 않아도 뭔가가 전달되었으리라, 통했으리라 믿는다. 음악에 대한 진심. 소통에는 역시 감동이 있다. 서로 돕고 살아야 삶이 살맛 나고, 살 만하다. 11월에 할 2시간짜리 특강도 또 용기 내어 수강생을 모집해 볼 것이다. 이제 이 강의를 찾아오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 더 알 것 같으니 강의 내용도 보강할 것이다.
돈 안되는 일도 재미가 있다.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은 설렘과 뿌듯함을 준다. 천재가 아닌 나는 음악과 글, 말에 대한 작은 재능으로 사람들과 더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다. 도전해 보니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