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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13. 2020

산허리의 고목아

반백살 반백수 첫 싱글 앨범 나오다.

작곡이란 걸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장난처럼 시작했는데, 음원유통사와 계약이 돼서 디지털 생글 앨범이 나오다니 너무 신기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든다.


음악을 무척 좋아했지만, 음악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형의 기에 눌려 열등감 속에 있었던 나. 부모님도, 선생님도 늘 형을 더 사랑하고 칭찬했기에 어딘가 자신감이 없었던 나.


그런 내가 반백의 나이에 '노래 만들기'를 시작해서 앨범을 내고, 내 노래가 국내와 해외 음원사이트에 유통이 되다니...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성과겠지만 나에겐 너무 큰 성과고 자축할 일이다.


처음에 달랑 멜로디만 녹음한 우스꽝스런 사투리 노래 '머라카노 아메리카노'.

최초로 유튜브에 업로드한 '변비송'

목소리가 정말 예쁜 애기 엄마가 재능기부로 불러줘서 더 빛났던 동요 '봄이다 왈츠;

노래가 뭔가 신났는데, 중2 선영 양이 좋아해 줘서 더 신났던 '어젯밤에 니가 한 말'

자장가로 만든 웃긴 노래 '잠이 온다 잠이 와'

펭수가 대세일 때 만들어 본 '펭수응원가'

직장인밴드 보컬 동생이 백수 노래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내가 직접 부른 '백수송'

흰 고무신 사진을 단톡 방에 올려놓고는 '코로나 백신'이라고 썰렁한 농을 치던 드럼 형님 말씀에 착안해 만든 '코로나 백신송'

처음 만든 트로트인데 나름 반응이 좋았던 '짝사랑'

깊은 밤, 애잔하고 쓸쓸한 중년의 정서를 진하게 담아낸 '가끔은 하늘을 쳐다보라 말하네'

합창단 지휘자님의 발성 연습에서 힌트를 얻어 처음 만들어 본 댄스곡 '입천장의 멜로디'

심혈을 기울였지만 반응은 별로였던 하이브리드 곡 '가면 속의 아리아'

4일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반응이 제일 좋았던 애절한 트로트 '산허리의 고목아'까지...


제법 의미가 있는 여정이었군.


이만큼 오기까지 별 볼일 없는 나를 00 기자단에 뽑아준 P대리님(지금은 '보통사람들' 공저 작가님)과 따뜻한 맘으로 작곡 초창기 때 내 동요를 한껏 칭찬해 준 A기자님(지금은 친구이자 공저 작가님)이 큰 힘의 시초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단 활동 이후로 나는 여러 도전 - 주로 음악과 글쓰기에 관련된 - 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긍정마인드가 더 커졌다. 그리고 조촐한 동요지만 상냥한 칭찬을 받음으로써 더 자신감을 갖고 다른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


큰돈을 깨 먹고 실패한 공무원 시험 이후, 재도전해도 시원찮을 판에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택도 없는 작곡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도, 친구들도 다 반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나는 화성학도 잘 모르고, 악기도 어설프게 연주하며, 그렇다고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무슨 가능성이 보였겠는가? 게다가 나이는 곧 50.


작곡의 즐거움이란 나만의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을 짓거나 사과를 수확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노력으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이 부가적으로 돈을 가져다주면 더욱 좋지만, 곡을 만드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사촌 누나를 통해서 형이 내 노래를 듣더니 비웃었다는 소릴 전해 들었다. 본인한테 직접 듣지 못했지만 '그것도 노래라고 만들었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싹 상했지만, 이미 현직 작곡가와 전직 실용음악과 교수님께 좋은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음원 유통사가 내 곡을 승인했다는 자체가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인정해 준 것 아니겠는가.


형은 중학교 때 음악실에서 우연히 피아노를 치다 음악 선생님이 형의 재능을 눈여겨보셔서 무료로 그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약 20년간 나이트클럽 밴드로 활동하면서 곡을 따고, 키보드를 담당했다. 곡을 딴다는 것은 악보가 없는 대중가요를 듣고,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 각각의 악보를 그려내는 일을 말한다. 그 당시에는 CD가 없었기 때문에 테이프를 일일이 되감기 해가며 곡을 땄다. 형은 이런 걸 잘했기 때문에 밴드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고, 그 밴드가 잘 나갈 때는 5성급 호텔 나이트클럽 무대를 많이 다녔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제주 MBC 담당자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잘난 형이 보기에 어설픈 내 음악과 음악 활동이 가소로워 보일만 하다. 글이든 음악이든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하려면 이런 비난에도 담담할만한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취향과 시선과 생각은 다 다르고, 그것을 틀리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내 꿈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면 된다. 흔들리지 않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고맙게도 지금의 직장 상사(팀장님)는 부탁도 하지 않은 홍보를 자처해서 하고 다니신다. 내 앨범과 책에 대한 홍보 말이다. 이런 분은 단지 직장 상사일 뿐이지만 어찌 그 인간성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앨범 소개 thanks to에도 썼지만 지금까지의 음악 여정에 격려와 용기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에너지가 지금 여기까지 나를 밀고 왔다.


<산허리의 고목아>

멜론 :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487452

외 벅스, 지니, 네이버뮤직, 바이브, 소리바다, 모모플, 플로 등에서 '산허리의 고목아'를 검색하세요.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rQS2rL1hVSs


앨범과 거의 동시에 나온 나의 공저 책, 음악여정 이야기를 담은 <보통사람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937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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